잔치잔치 열렸네~봄 여는 봉무향연(峰舞饗宴)

[무용리뷰] 2014년 한국전통춤협회 정기공연

기사입력 : 2014.03.31 13:14 (최종수정 2015.02.27 00:09)

[글로벌이코노믹=장석용 문화비평가] 지난 2012년 7월 7일 발족된 한국전통춤협회(이사장 錦堂 채상묵) 주최로 지난 3월 8일과 9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펼친 전통춤 퍼레이드는 전통춤의 체계적 전승, 보존을 위한 춤 고수들의 필살기를 보여준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기름기처럼 달라 붙어있던 거들거림을 우회한 춤들은 전통의 본류를 향한 몸부림 같은 처절한 진실의 친화력을 소지하고 있었다.

사철 꿈틀되는 상업적 춤들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지난 해 3월 9~10일 현존하는 다양한 류파의 전통춤의 계보를 잇는 전통무용가들의 한국전통춤협회 창립공연은 전통춤의 시대성과 예술성이 국내외에서 대중화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오죽했으면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춤의 지조를 지키려했을까 궁금증이 일 정도이다.

전통춤 목록의 상위를 차지하는 채상묵, 이길주, 한혜경, 김은희, 임현선, 서영님, 오율자, 오은희, 진유림, 이정희, 채향순, 임수정, 고명구, 신미경, 김정임, 문숙경 외 28명이 펼친 연기는 정형과 양식에 충실한 전통춤의 깊숙한 향기로 우리 것의 진수를 보는 즐거움을 선사하였다. 올곧은 정신으로 춤에 매진한 선비들이 펼친 공연은 봄날, 환한 산수유를 떠올리게 하였다.

춤 구성의 완급을 조절하고 춤의 이해를 돕는 양승종(한국전통춤협회 학술분과위원장, 이북5도위원회 문화제 위원)의 차분한 해설도 춤의 품격을 높이는데 기여하였다. 특히 독무의 진지함을 덜어주는 익산시립무용단 단원, 채향순 무용단 단원, 채상묵 이 사장의 제자들과의 춤은 춤의 볼륨과 군무가 주는 다양한 변주의 맛을 느낄 수 있게 하였다.

■춤 풍경1-땅을 두드려

▲진유림
▲진유림
1. 허튼법고 : 출연 / 진유림(익산시립무용단 예술감독, 원디대 전통공연예술학과 교수) 외 12명
법고춤은 법고를 두드리며 추는 법무이다. 법고는 대중 운판 목어와 함께 불과 사물에 속하는 것으로. 이를 두드리는 것은 축생 을 구제하기 위함이다. 진유림은 솔로에서 군무로 전이되면서 자유로이 파생되는 흐트러진 춤으로 승무의 ‘법고’의 엄정한 형식을 깨고 본래의 춤 취지에 맞는 바라를 들고 흥이 넘치는 춤을 춘다. 고동(鼓動)과 어울린 군무는 예악당에 올린 경건한 제의의 깊이감을 예시하고 전통춤의 ‘미덕’, ‘예의’, ‘수신’의 가치를 지키겠다는 이미지로 다가왔다. 황산벌 춤의 가치를 일깨우며, 후미진 곳에서 보석을 가공한 듯한 그녀의 춤은 문화인류학적 가치가 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나 있을 법한 희망의 섬, ‘허튼법고’는 슬픔과 고통의 용해물이다. 밋밋한 맛에서 간을 한 그녀의 춤에서 춤의 동력원을 발견한다.

▲김정임
▲김정임
2. 강선영류 태평무 : 출연 / 김정임(시흥연화전통무용단 대표)

전래의 왕십리 당굿의 특이한 무속장단을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쾌하고 특이한 발짓춤에 손놀림이 우아하고 섬세하며 절도 가 있어 우리 민속춤이 지닌 정중동의 흥과 멋을 지니고 있으며 음악은 낙궁, 터벌림, 섭채, 올림채, 자진도살풀이 등으로 우리 민속음악의 대표적인 가락과 장단이 고루 어우러져 매우 독특하며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태평무와 호남살풀이춤 이수자로서 제9회 전국전통무용공연 대통령상을 수상한 그녀가 생음악에 맞추어 자유영혼의 몸짓으로 춘 춤은 사치에 가까운 열정의 사운드와 정겨운 색감으로 분위기를 잘 리드하였다. 세속에서 궁중의 품위로 격상한 춤은 담백하게 이 춤에 친숙한 춤애호가들에게 자연스럽게 ‘자랑스러운 우리의 춤’으로 부상된다. 김정임은 ‘풍요의 태평무’가 문명의 이미지가 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

▲고명구
▲고명구
3. 호남산조춤 : 출연 / 고명구(호남산조춤보존회 회장)

이 춤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 47호로 지정된 춤으로 호남의 판소리와 시나위를 바탕으로 한 산조음악에 맞추어 추는 입춤 형식의 춤이다. 진양조부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까지 느린 장단에서 빠른 장단으로 몰아가는 선율 속에서 장단과 장단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한과 흥, 그리고 신명을 자유롭게 승화된 섬세한 몸짓으로 구현하는 춤이다. 특히, 이 춤은 호남지방 기방춤의 성향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인위적 기교나 정형화된 움직임보다는 천지인(天地人)의 조화와 절주(節奏)를 따르는 몸의 기(氣)와 리듬을 춤으로 자유롭게 형상화하고 있다. 봄날 고운 춤결로 만난 고명구의 춤은 디딤, 불림, 사위에 어울리는 침화된 슬픔을 표현해내는 연기력이 탁월하다. 그녀의 춤은 심연의 희망을 탑재한 교태와 관객을 흡인하는 매력이 있다. 환한 표정 연기가 그녀를 ‘달’ 이거나 ‘꽃’으로 만든다. 고비를 넘기고 푸른빛을 잉태한 춤, 호남산조춤의 매력이다.

▲신미경
▲신미경
4. 이매방류 승무 : 출연 / 신미경(예술단 ‘결’ 단장)

‘승무’는 우리나라 민속춤의 정수(精粹)라 할 만큼 가장 품위와 격조가 높은 춤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이매방’선생의 ‘승무’는 유려(流麗)하게 흐르는 춤의 조형적 선(線), 고고(孤高)하고 단아(端雅)한 정중동(靜中動)의 춤사위로 인간의 희열(喜悅)과 인욕(忍辱)의 세계를 그려낸 춤이다. 선생의 ‘승무’는 춤사위에 따라 무거운 업(業)은 타령, 업을 벗는 과정을 도드리, 속세(俗世)와의 완전 결별을 굿거리, 해탈(解脫)하는 희열(喜悅)을 북으로 표현하고 있다. 신미경의 ‘승무’는 그녀가 풍기는 검사(劍士)의 이미지를 희석시키는 부드러움을 여성적 ‘고뇌의 미학’으로 풀어내고 있다. 사바세계의 감각이 남아있는 ‘저편’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떨구어내지못한 아쉬움인지 진청 속에 칼날 대신 단봉(短棒)으로 마음을 다잡는다. 부드러움(승무)과 강함(검무)의 중간, 그녀의 심사를 표현하는 고민의 정점, 화사를 삼키고 자신을 촛농처럼 녹여가는 과정은 좀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이정희
▲이정희
5. 도살풀이춤 : 출연 / 이정희(김숙자류도살풀이보존회 회장)

「도살풀이춤」은 도당 살풀이를 줄인 말로써 민속무의 하나로 행해지고 있는 살풀이춤의 원초형으로 경기도당굿의 뒷전거리에서 추어지던 춤이다. 이 춤은 흉살과 재난을 소멸시켜 안심입명, 나아가 행복을 맞이한다는 종교적 소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자연스럽고 소박하여 삶의 깊은 뜻을 가지고 있으며 긴 수건에 의한 공간상의 유선이 매우 다양하여 선이 그려지는 형태가 하나의 소박한 화폭과도 같습니다. 이 춤은 각기 정(靜)중(中)동(動), 동(動)중(中)정(靜)의 신비스럽고 자유로운 춤사위들로 구성되어 있다. 매헌춤 보존회 이사장인 그녀의 춤을 여러 번 봐 왔지만 다양한 장단에 맞춘 그녀의 춤에는 늘 춤 중심을 잡는 여유가 있다. 코리언 발레블랑 살풀이춤은 이 춤의 지역, 쓰임 간에 다양한 변위(變位)를 거쳐 예술로의 승화를 보이고 있다. 특히 김숙자의 제자, 이정희의 추임새는 큰 키와 4m에 달하는 긴 천에서 나오는 조형미, 구음이 복합시킨 처연한 슬픔을 침화시키고, 탁월한 연기력은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다.

▲임수정
▲임수정
6. 박병천류 진도북춤 : 출연 / 임수정(박병천류 전통춤보존회 회장, 경상대 민속무용학과 교수)

박병천류 진도북춤은 화려한 북장단과 춤사위를 기본으로 양손에 북채를 들고 자유자재로 장단을 구사하며 멋들어진 춤사위와 신명으로 춤을 이끌어 나간다. 마치 커다란 독수리가 허공을 나는 듯 노니는 듯, 천길 낭떠러지로 물줄기가 내리꽂히는 듯 웅장하고도 멋스런 춤사위는 보는 이로 하여금 무아의 경지로 빠져들게 한다. 강렬한 북가락과 함께 다양하고 유연한 장구가락을 동시에 갖고 있어 남성적인 힘과 여성적인 섬세함이 어우러져 독특한 흥과 멋을 함축하고 있는 춤이다. 모두가 어울리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춤, 흥과 신을 부르는 이 춤은 모두가 선호하는 춤이다. 예술적 연기에 치중하다보면 지루할 즈음에 등장하는 이 춤은 요란한 음악이 분위기를 선도하면 빨간 치마에 노랑 저고리를 입은 임수정은 북을 메고 신명으로 질주한다.

▲문숙경
▲문숙경
7. 이매방류 살풀이춤 : 출연 / 문숙경(문숙경전통춤연구회 대표, 원디대 전통공연예술학과 교수)

‘살을 풀다’라는 의미를 지닌 살풀이춤은 한을 설움의 명주 수건자락에 담아 용해시켜준다. 살풀이는 놀음판의 신명처럼 넘치는 흥겨움이 아니라 제단 앞에 나선 사제처럼 엄숙한 신명을 지닌 전통춤으로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동과 그 춤을 보는 사람들의 힘을 끌어내는 커다란 느낌을 만들어낸다. 포그가 적절히 뿌려진 가운데, 문숙경의 살풀이춤은 신비감을 뿌려가며, 찬연히 빛나는 선을 보여준다. 춤은 슬픔에서 노닐다가 극기하는 모습으로 최상의 절제감을 보인다. 슬픔의 정제물 봄, ‘봄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구름과 바람을 불러 나무를 흔들고 땅을 비집고 슬픈 전주곡이 깔린 뒤 온다. 슬픔의 변방을 비옥한 풍경으로 만들어 내는 힘을 소지한 문숙경의 춤은 봄 하늘의 엄정(嚴正)을 깨는 나름의 방식을 잉태하였다.

▲채향순
▲채향순
8. 장고춤 : 출연 / 채향순(채향순 무용단 대표, 중앙대 무용과 교수) 외 8

우리 전통예술에는 신명의 미학이 존재한다. 은근히 흥을 돋우다가 회오리처럼 휘몰아치는 한국적 신명의 미학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 바로 이 장고춤 ‘신명의 휘모리’이다. 느린 장단으로 흥청거리며 장고춤을 추다가 빠른 장단으로 몰아 도약하면서 흥을 돋우는 이 작품은 한국적인 신명을 대표한다고 할 만하다. 장고에 정을 싣고, 춤의 연에 고마워하면서, 관객들에게 공감을 뿌리는 장고는, 수범적 절제에서 화려한 녹색 페레이드에 이르는 상큼한 진동을 선사한다. 채향순의 장고춤은 그녀의 몸내로 매혹시킨 관객들에게 채향순 특유의 춤이 보여주는 ‘몸의 미학’과 ‘몸에 관한 상상력’을 확장시킨다. 정열과 청정의 상징, 붉은 치마, 청저고리에 사운드가 합세하여 놀 수 있는 장(場)을 만들어 가는 ‘채향순의 춤의 여정’으로의 동참은 ‘향채(香菜)의 짙은 미감을 떠올리게 하는 공연이었다. 기합과 함성으로 피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존중의 서사‘를 써 내려간 그녀의 작업은 성공적 수행으로 비춰진다.

■춤 풍경2-하늘을 열다

▲임현선
▲임현선
1. 강선영류 태평무 : 출연 / 임현선(한국전통춤협회 교육분과위원장, 대전대 무용과 교수)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되어있는 태평무는 한성준이 왕십리 당굿의 무속장단을 바탕삼아 무대춤으로 구성한 것으로 나라의 풍년과 태평성대를 축원하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의젓하면서도 경쾌한 춤사위와 가벼우면서도 절도 있게 몰아치는 발 디딤새는 신명과 기량의 과시가 돋보이게 하는 춤으로 손색이 없을 뿐 만 아니라 정중동의 미적 형식을 가진 완벽한 춤이라 할 수 있다.

음악은 진쇠장단을 비롯하여 낙궁, 터벌림, 도살풀이 등 다양한 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공의 소유자 임현선이 보여준 ‘태평무’는 곰삭은 연기로 화려한 ‘왕국의 전설’을 떠올리게 한다. 그녀의 춤은 서울, 대전을 오가며 중부 지역의 정형을 보여준다. 혼돈의 춤판에 포근한 향수와 아름다운 춤길로 ‘춤의 존엄’을 상제한 춤은 ‘삶의 고단’을 살포시 밟고, 고통의 기억을 삭제한다. 그녀가 뿌리는 ‘태평무’ 씨앗은 안전하고 건강한 흙에 착지하여 뿌리를 내리고 햇살을 받을 것이다.

▲오은희
▲오은희
2. 배정혜류 산조 : 출연 / 오은희(리을춤연구원이사장, 서울예대 무용과 교수)

산조는 민속 악곡에 속하는 기악 독주 형태의 하나로, 말 그대로 ‘허튼 가락’ ‘흐드러진 가락’의 뜻이다.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지방에서 발달한 것으로, 시나위와 판소리의 가락을 일정한 리듬의 틀에 넣어 연주하는 즉흥성을 띤 음악이다. 장단의 틀 외에는 정해진 것이 없는 음악에 서민들의 슬픔과 기쁨들의 생활 감정을 담았다. 느린 속도의 진양조로 시작하여 차차 빠른 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로 바뀌어 끝난다. 본 공연에서 추어지는 산조는 배정혜류 산조이다. ‘개선문’의 묘사처럼, 비스듬히 조명으로 칼집을 내고 아쟁으로 간을 맞추며 시작된 오은희의 ‘산조’ 춤은 ‘산조’ 춤 자체가 갖는 극도의 미적 장치들을 활용하여 ‘춤의 화원’에서 절망을 걷어내고 만개(滿開)의 봄을 투사한다. 씻어내지 못한 춤의 언저리, 그곳에 남아 있는 절망의 얼룩이 더욱 예술성을 띄는 오은희의 ‘산조’는 빙하의 계곡을 지나 오로라로 빛나는 신비감으로 다가온다.

▲한혜경
▲한혜경
3. 흥지무(興之舞) : 출연 / 한혜경(한국전통춤협회 부이사장, 장고춤보존회 대표)

흥지무는 교방춤에 근간을 둔 부채입춤 형태의 춤으로써 춤사위 곳곳에 흥겨움이 묻어나는 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여인의 아름다움과 흥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춤이다. 지극한 절제의 미와, 여인의 은근한 요염함이 돋보이며, 독무와 군무로 출 수 있는 춤으로써 형태나 춤사위의 자유로움을 연출할 수 있는 춤이며, 한혜경의 빛깔이 선명하게 그 향기를 뿜어내는 작품이다. 그녀는 절대 미감 표출로 ‘상상’의 한계를 허물어 놓는다. 몸을 치장한 장신구, 심정의 변화를 읽게 해주는 부채, 표정연기, 가벼운 동선의 유선(流線)은 몰입에서 오는 몸시(舞詩)를 선사한다. 은사시처럼 떨면서도 의연함으로 고고한 달빛을 즐기는 서정적 낭만은 독무만의 집중을 보여준다. 문학적 깊이감, 음률을 느끼게 하는 ‘가락’도 주제에 밀착되는 울림이었다.

▲김은희
▲김은희
4. 이매방류 승무 : 출연 / 김은희(한국전통춤협회 부이사장, 밀양검무보존회 회장)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인 승무는 소위 법무라 일컫는 민속무용의 진수로 알려져 있는 격조 높은 예술식의 춤이다. 춤사위나 춤의 구성은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잘 다듬어져 있으며 느린 염불장단을 타는 염불춤이 또한 일품이다. 전통무용의 커다란 한 축, 김은희는 오랑캐꽃 같은 강한 생명력으로 한결같은 우리춤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그녀의 ‘승무’는 테크닉으로 추는 춤이 아니라 가슴으로 추어내는 ‘열정’이 탐미적으로 비춰진다. ‘승무’의 비경(秘景), 비기(秘技), 비의(秘意)를 채워가는 김은희의 능수능란한 연기력은 욕심에 대한 부질없음을 리듬감있게 잘 짜인 구성으로 보여준다. 찬 칼끝을 타고 비상(飛翔)을 꿈꾸는 그녀가 심오한 철학과 맞닿아 있는 ‘승무’를 자신감 있게 보여주고 있다. ‘살풀이 춤’, ‘밀양검무’, ‘승무’ 등 우리 춤의 원리를 설파해온 그녀가 있는 한 밝게 구르며 재잘대며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 같은 전통춤밭을 일구는 사람들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채상묵
▲채상묵
5. 한량무 : 출연 / 채상묵(한국전통춤협회 이사장, 한국무용협회 고문)

한량무는 대표적인 남성춤으로써 선비의 의연한 기품과 내적 자유로움을 암시하는 절제된 춤사위로 정중동의 응축미를 바탕으로 한 우리 춤의 충일한 정신세계를 드러낸다. 채상묵은 남성 7인의 무사(舞士)들을 대동하고, 남성적 역동성과 고수의 유연함을 섞어 시대의 담론을 창출한다. ‘동행’, ‘같이 가는 삶’의 또 다른 형태는 비움이었다. 자신을 털어내고 호쾌하게 춘 춤은 선인(仙人)의 달관에 이른 겸허함이 돋보였다. ‘식자들의 의식’이나 ‘억지 존중’의 ‘체’념을 배제하고 자연에 합일된 듯 한 춤은 마초의 울타리를 벗어나 나비처럼 자유로운 ‘한량의 의지’를 보인다. 채상묵, 정착의 묘(妙)를 모르는 그가 전통으로의 춤 기행을 꿈꾸는 한량무는 시나위의 선율과 즉흥 춤이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연상시킨다. 선비의 내면을 표출시키던 남사당패의 연희적 투사(投射)가 이루어진 채상묵의 ‘한량무’는 채상묵 다운 구성과 신명, 운치가 전통의 깊숙한 고리와 연결되어 있었다.

▲오율자
▲오율자
6. 이매방류 살풀이춤 : 출연 / 오율자(한양대학교 예체능대학장)

이매방류의 살풀이춤은 고도로 다듬어진 예술로서 한과 신명을 동시에 지녔으며, 고고한 개성의 청아한 멋과 정중동이 함께 살아 숨 쉬는 춤이다. 살풀이춤의 특징은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대삼소삼의 구분이 분명하며, 그 강약의 흐름 속에서 맺고 푸는 데 이 춤의 품격이 있다. 늦은 밤, 차가움 속에 밤공기를 흡입하고 꽃잎을 탄탄하게 만드는 매화꽃, 오율자의 살풀이춤은 그런 과정의 춤과 비슷한 청초가 들어있다. 제(祭)나 의식(儀式)의 범주를 떠나 찬란히 빛나는 ‘백색유희’는 물푸레나무의 가지 대신 백색 천을 들고 시작된다. 천과 대화하고, 천을 사자(使者)로 보내고, 천과 놀면서 올리브 나무의 윤택을 닮아간다. 매화의 대용 이미지로 다가온 그녀의 춤엔 초월적 이미지와 소녀적 감성이 적절히 섞여있어서 유혹의 유전자가 감지된다.

▲이길주
▲이길주
7. 호남산조춤 : 출연 / 이길주(한국전통춤협회 부이사장, 원광대 교수)

이 춤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 47호로 지정된 춤으로 호남의 판소리와 시나위를 바탕으로 한 산조음악에 맞추어 추는 입춤 형식의 춤이다. 진양조부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까지 느린 장단에서 빠른 장단으로 몰아가는 선율 속에서 장단과 장단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한과 흥, 그리고 신명을 자유롭게 승화된 섬세한 몸짓으로 구현하는 춤이다. 특히, 이 춤은 호남지방 기방춤의 성향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인위적 기교나 정형화된 움직임보다는 천지인(天地人)의 조화와 절주(節奏)를 따르는 몸의 기(氣)와 리듬을 춤으로 자유롭게 형상화하고 있다. 호남산조춤 보유자, 이길주의 춤은 즐거움과 쾌락 사이의 경계를 구분하고, 도취감(ecstasy)에 이르게 하는 완벽한 무술(舞術) 퇴적층의 문양과 무늬를 보여준다. ‘즐겁다. 아름답다. 또 보고 싶다.’가 결론이다.

▲서영님
▲서영님
8. 은방초류 장고춤 : 출연 / 서영님(한국전통춤협회 부이사장, 서울예고교장역임)

상체의 아름다운 선과 발동작의 움직임이 조화를 이루면서도 장고를 비스듬히 어깨에 둘러메고 다양한 장단의 변화와 도약을 이루고 있는 춤이다. 특히 이 춤은 흥과 멋을 자아내는 은방초 선생님의 아름다운 자태뿐만 아니라 멋들어진 가락의 이매방 선생님의 춤사위가 녹아져 서영님의 장고춤으로 거듭나고 있는 대표적인 한국 민속춤의 하나라는 특징을 지닌다. 서영님의 홍조(紅潮) 띈 얼굴, 안정과 여유가 불러오는 흡인력, 요염이 숨어있는 사위, 습지의 우울을 털어내는 디테일은 귀족 같은 장고 채의 장식을 보면 알 수 있다. 숱한 날을 곰삭여 ‘자신’을 조련해낸 그녀가 장고로 읽어낸 전통춤판의 풍경은 통사적 난장이다. 서영님은 갇힌 공간을 파(破)하면서 자목련(紫木蓮)의 열정으로 자신의 자화상을 장고로 그려내고 있다. 그녀의 춤은 혼자가 아니라 어울림이 가미되었을 때 더욱 빛난다. 춤판에 포획되어, 춤을 지키고 주인이 된 그녀의 장고춤엔 스토리가 있다.

/장석용 문화비평가(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