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열정·에너지 넘친 작지만 큰 춤판

M극장 스프링 시즌의 떠오르는 안무가전…박시원, 이지숙, 차종현, 최희정 열연

기사입력 : 2014.05.20 13:13 (최종수정 2015.03.21 02:25)

[글로벌이코노믹=장석용 춤비평가] 최근 포이동 M극장은 한 달 간 ‘떠오르는 안무가전’, ‘우리시대 춤과 의식전’, ‘신진안무가 넥스트 A’전, ‘신진안무가 넥스트 B’전으로 나누어 열다섯 안무가의 열네 편을 공연하였다. 현대무용, 한국창작무용, 발레 등 장르에 관계없이 편성되는 작품들은 국내외에 주목을 받고 있고, 명칭은 연령에 따른 구분일 뿐 춤 기량은 다양한 편차를 보이고 있다.

그 중, 첫 번째 주의 ‘떠오르는 안무가’전은 박시원(김운미무용단, 부산예고 강사) 안무의 『사시(死時)―3days, Burn Me Out,16분』, 차종현(중앙대 현대무용강사) 안무의 『대답없는 질문, Unanswered Question And,15분』,이지숙(이해준무용단, 안양예고강사) 안무의 『누군가, Someone,15분』, 최희정(순헌무용단, 숙명여대 강사) 안무의 『그린라이트 오프, Green Light Off,17분』가 경연을 버금가는 열정과 진지함 속에 공연되었다.

▲박시원안무의'死時-3days'
▲박시원안무의'死時-3days'
▲박시원안무의'死時-3days'
▲박시원안무의'死時-3days'
박시원 안무의 『사시(死時)―3days』 는 3일간의 장사(葬事)를 모티브로 한다. 산 자가 사자(死者)를 삼일 동안 애도하는 풍습이다. 박시원의 발상은 ‘죽은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 가는 삼일’로 설정한다. 느닷없이 미래는 닥쳐오고 과거가 발목을 잡는다. 예고 없이 기록되는 애사(哀史), 박시원은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자신을 소진 시키는 열정을 쏟아 붙는다.

제34회 동아무용콩쿠르 전통부문 금상 수상의 기량이 발휘된다. 관객에게 등을 보이며 흐느끼며 엎드려있는 가족을 상징하는 유족들, 사내의 해설이 떨어지고 먼 여행(죽음)을 떠남을 암시하는 네 명의 여인들, 나비처럼 부드럽게 무선(舞線)의 의식을 치른다. 판소리의 걸쭉함이 대범함을 견인한다. 창백한 조명, 아름답고도 경쾌한 춤으로 비움과 반성의 장(場)을 만든다.

『돌아가는 길』, 『고백 ? 남김없이』에서 쓸쓸함과 현대의 우울을 표현했던 그녀가 죽음을 관조하며 냉철하게 자신에게 다짐하는 말, 빠르고 강한 춤사위처럼 ‘강해지리라’이다. 두려움에서 출발한 그녀는 백색 슬픔이 기쁨의 백색이 되도록, 뜨거운 눈물이 자신을 성숙시키는 정화수가 되길 기도한다. 아직 풋풋한 슬픔이다. 진주가 만들어지는 슬픈 사연을 참고하였으면 한다.

M극장 춤풍경에 걸린 많은 죽음들 가운데, 박시원의 죽음은 씻김굿의 정제, 울음을 차단한 몸짓, 나름대로의 죽음 수사를 거부한 독특함을 지니고 있다. 감정을 배제한 차가운 몸짓은 이미지를 생략한 점과 선의 조합만 남은 회화를 연상시킨다. 소금으로 남을 춤을 견지하는 박시원은 양식적 계산에서 오는 춤의 지속성과 아울러 ‘상처’의 깊이감을 동시에 수행해야한다.

▲차종현안무의'대답없는질문그리고'
▲차종현안무의'대답없는질문그리고'
▲차종현안무의'대답없는질문그리고'
▲차종현안무의'대답없는질문그리고'
차종현 안무의 『대답없는 질문』은 동작으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방식을 차용한다. 테크닉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야심은 타 작품과 차별화되지 않으면 위험한 발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는 춤 철학자의 면모를 보이며 ‘질문의 본질은 무엇인가’, ‘대답의 어떠한 면이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게 하는가’, ‘편향된 질문에 대한 해석은 어떠한 위험이 따르는가’를 실연한다.

자신의 공간, 원형이다. 현실에 대한 두려움, 그 틀을 두고 벌어지는 남성 이인무는 ‘하나를 알면 모든 것이 관통될 것이라는 생각’이라는 경솔이 깔린다. 자신 앞에 주어진 질문에 바로 내려야하는 대답들에 짜증이 인다. 정해진 답과 함께하는 삶이 시대의 소망이 되듯, 현대는 수많은 답보다 많은 질문과 답을 갈망한다. 차종현의 춤깔은 약간은 낯설며, 긴장감이 돈다.

제2회 베이징 국제안무 콩쿠르 최고안무상 수상자가 벌이는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작은 몸짓들은 이끼 낀 고독에서 오늘날의 고정된 관념들을 깨고자하는 염원을 담는다. 이 땅의 모순을 바로잡고자하는 몸짓들은 하늘이라도 울릴 듯 처절하며 절실하다. 차종현의 춤은 ‘고도를 기다리며’ 자기희생을 감내했던 많은 젊은이들을 위한 ‘젊은 날의 초상’이다.

현대 무용가들의 현란함이 서 보였던 소극장, M에 나타난 차종현은 류석훈, 이영일, 김형남과 같은 남성 무용가들의 기량의 일면을 보인다. 자신을 떠받히는 힘은 기량과 더불어 주제의식을 향한 치열한 연구가 따라야한다. 고통 없는 열림은 없다. 자신도 모르게 찾아온 우월적 한계를 극복해야한다. 더 많은 작품으로의 기행과 만국공통의 언어로서의 춤을 연구해야할 필요가 있다.

▲이지숙안무의'누군가'
▲이지숙안무의'누군가'
▲이지숙안무의'누군가'
▲이지숙안무의'누군가'
이지숙 안무의 『누군가』의 주제는 會者定離 去者必返(회자정리 거자필반),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헤어짐이 있으면 만남이 있다”이다. 이 작품은 ‘파울로 코엘료’의 책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했다’에서 모티브를 얻어 젊은이들의 이별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우리는 종종 늘 자기 곁에 있을 것 같은 소중한 누군가를 망각하며 살아간다.

무료한 시간의 흐름은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고 스스로를 그 벽에 가두어 버린다. 이별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지쳐있고 자욱한 안개 속 같은 무기력을 느낀다. 창 틈 너머 하늘조차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고, 무거운 공기가 미천한 코와 입을 타고 신체 깊이 자리 잡아 그녀의 몸을 짓누른다. 찢어버리고 싶은 과거, 눈물은 사치, 박동은 고막을 귀찮게 한다.

제49회 전국신인무용경연대회 ‘금상’ 수상자, 이지숙은 섬세한 여성적 필치로 실타래처럼 꼬인 자신의 삶을 하나 씩 성찰하며 그 근원을 찾아간다. 사랑, 이별, 기다림, 선택 등에 걸친 추억이 피아노 선율과 조우하며 자신을 설명해낸다. ‘그 때 그 빛’을 따라 갔을 걸 하는 회한이 인다. 자신의 존재를 희생한 모든 ‘누군가’를 위해 그녀의 춤은 존재가치를 부여받는다.

이지숙, 그녀 춤의 희망 원리는 순수와의 조화로운 결합에 있다. 서정성의 극대화, 고전의 현대화, 고귀한 교양의 고양, 지울 수 없는 춤의 실천과 같은 과제가 따른다. 자신의 춤의 시대성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수반되었을 때, 그녀의 춤은 빛을 발한다. 춤의 발광(發光)을 위한 가벼운 산책은 개인적 신상 털기가 아닌 우주를 향한 자신의 도전기가 될 때, 힘을 발한다.

▲최희정안무의'그린라이트오프'
▲최희정안무의'그린라이트오프'
▲최희정안무의'그린라이트오프'
▲최희정안무의'그린라이트오프'
차수정 순헌무용단 지도위원 최희정 안무의 『그린라이트 오프』는 ‘마녀사냥’의 푸른빛의 사멸을 기본 개념으로 차용한다. 빨간 구두의 상징성 위에 노래가 깔린다. 다섯 명의 여인들이 등을 보이고 상이한 형상으로 가수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의자와 구두는 자리 잡음과 호사를 상징, 여인들은 그 꿈을 향해 욕망의 나날을 채워나가고 싶어 한다.

‘햇빛이 너무 맑아 눈물납니다/살아 있구나 느끼니 눈물납니다/기러기떼 열지어 북으로 가고/길섶에 풀들도 돌아오는데/당신은 가고 그리움만 남아서가 아닙니다/이렇게 살아 있구나 생각하니 눈물납니다.’ 숱한 봄날들을 예술을 위해 희생해야하는 사람들에게 햇빛은 사치이고 존재는 현실이다. 최희정은 도종환의 시 ‘다시 오는 봄’의 처연함을 병풍처럼 두른다.

2011년 대전 젊은 춤 작가전 안무상 수상자 최희정은 차별화된 현실감으로 현실에 대한 두려움과 미래에 대한 불투명을 ‘투명하게 빛나는 춤’으로 설명해 보이고 있다. 최희정 안무, 순헌무용단 특유의 섬세하고 전통을 기반으로 한 그녀의 춤사위는 낙관처럼 뚜렷하다. 현대 물결의 흐름을 조화롭게 흡수, 그녀가 만들어 내는 작업은 달처럼 환하고 별처럼 빛난다.

최희정, 그녀의 오기가 숨결로 속살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할 때,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녀가 쓰는 시는 시인의 것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이 시인을 넘어야한다는 것이다. 환상에서의 안주가 아니라 거친 세상으로의 모험이 수반될 때, 그녀의 춤은 더욱 에너지를 받을 것이다. 별난 것이 아닌 자체로서의 변태(變態)로도 춤은 새롭다.

‘떠오르는 안무가’전에서 네 안무가가 차린 춤 잔치는 조촐하지만 열정과 에너지를 느끼게 하였다. 아직 그들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이 있다. 거친 언어로 토해낸 그들의 춤은 연륜으로 숙성해 좋은 추억으로 간직할 공간을 마련하였다. 누군가는 그대들의 춤 수련시대를 기억하며 그대들의 노력에 보답할 날이 오리라고 믿는다.

/장석용 춤비평가(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