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란국죽을 관조의 대상으로 삼은 선비들의 품격

윤성주 안무의 『묵향, The Scent of Ink』

기사입력 : 2014.06.24 15:14 (최종수정 2015.02.26 09:04)

[글로벌이코노믹=장석용 춤비평가] 춤 원형은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다수 외국 문화 평론가들의 주장이 다소 엉뚱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기본 정신과 골격은 유지하면서도 서정과 서사의 구별이 있듯, 안무작이 전통의 모습에 천착하느냐 현대적 모습을 가져가느냐는 전적으로 안무가의 선택에 따른다. 윤성주(국립무용단 예술감독)는 전통과 스승을 훼손하지 않고 『묵향』을 현대화에 연착륙시킨다. 윤성주의 춤 기호논리학과 의미론은 옛것에 기인하면서도 명쾌함과 연결된다.

 
 
『묵향』의 무소(舞巢)는 춤 낭만파의 거두 최현이다. 최현의 춤집에서 만들어진 『군자무』는 깊고 길게 뿌리를 내려 지금에 이른다. 국립무용단 단원, 국악고 무용과 교사 시절 축적한 실기와 이론 경험을 접목한 이 작품은 국립 무용단의 향방을 가늠케 한다. 선비에 대한 집요한 성찰, 매란국죽에 대한 본래의 빛깔 강조는 비장한 자연미로 난감한 반향(反響)을 불러 온다. 분명한 주제에 대한 가공, 상상, 수사는 즐거움의 고양, 미적영역 확보,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서무(The Outset), 매화(Plum Blossom), 난초(Orchid),국화(Chrysanthemum), 오죽(Black Bamboo), 종무(The Finale)의 6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정구호의 연출, 정가와 다양한 산조로 재구성된 음악이 장간(場間)의 특성을 살리고 있다. 가야금, 거문고, 대금, 해금, 전통 악기와 바이올린이 어울린 음악은 『묵향』을 비자림의 신비에서 발레에 버금가는 조화(調和)로 이끈다. 아기편제의 간결함이 작품의 기본 방향이 부합된다.

전통 타악에서 시작된 춤은 거문고의 중모리에 선비의 성품을 상징하는 첼로의 묵직함을 동반한다. 선비의 도포를 상징하는 하얀 바탕에 수직의 굵은 검정선이 지필묵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선과 움직임의 이미지가 극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흑백유희는 시작된다. 볼륨을 살린 너른 도포 자락이 품을 수 있는 마음의 깊이를 보여준다. 땅의 기운을 받은 춤은 하늘의 축복을 받는 듯하다. 한글 제목이 뜨고, 매란국죽의 장(場) 나눔 표시도 한글이다.

 
 
서무(序舞): 달관을 지향하는 춤은 절제미를 받혀주는 호흡과 움직임의 균제감으로 선비의 특성을 잘 살리고 있다. 정면, 측면, 후면의 움직임을 보여주며 확장감을 살리고, 9, 5, 1, 3 의 남성 춤 조합 인원은 배치된다. 서무(序舞)는 자연스럽게 장면이 분할되고 최고의 격식으로 학춤과 한량 춤의 경계를 넘나든다. 비주얼은 무대에 맞춘 약식 갓과 도포, 리듬감을 살린 회전을 비롯한 좌우전후의 동작 전이에 따라 선비들의 고결한 정신세계를 표현한다.

매화(梅花): 배경막은 매화의 만개를 알리는 문양으로 치장되고, 가곡, 가사, 시조의 분위기를 총괄하는 정가, 휘몰이 시조가 흐름을 잡더니 울림으로 번진다. 여성 군무로 구성된 이 춤은 붉은 저고리에 부풀린 흰 치마의 여인, 독무로 시작된다. 느리게 전개되는 멋들어짐, 매화향이 번짐을 느끼게 한다. 진행에 따라 배가되는 매화, 여인들은 절개의 춤을 춘다. 미풍에 타고 들어 올려지는 버선 발, 잔걸음, 숨결이 느껴지는 만춘(晩春)의 결(潔)은 곱다.

 
 
난초(蘭草): 은은한 난향이 벗을 부르는 여름, 중중모리를 이루는 가야금, 머리에 쓴 양반을 상징하는 모던한 갓의 선비, 청저고리에 회색치마를 입은 여인과 청초(淸楚)를 추어 된다. 난을 상징하는 초록선 조명으로 떨어지고, 현(絃)과 춤 환상이다. 무예에 버금가는 집중, 바닥까지 연결되는 흰 바탕에 검정 줄, 절묘한 선위의 춤이다. 너른 마음의 긴 도포를 한 선비의 기개와 내조와 고혹의 난초꽃, 남성 삼인, 여성 삼인으로 조우한다. 남성 이인, 듀엣, 여성 이인 등 놀라운 좌우 균제감, 음감과 색감이 살아난다. 여름은 가볍게 물러난다.

국화(菊花): 국화를 상징하는 노란 치마에 갈색 저고리, 가을을 불러온다. 결실을 나타내는 노랑, 깊어가는 가을, 진양조의 해금이 구슬프게 운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무대는 온통 노란 국화로 뒤덮인다. 여인들은 국화 자체이며, 음미하는 객관자가 되기도 한다. 그들의 자세는 한국화의 주인공 여인들의 전형이 된다. 국화 문양이 개별이 아니고 모두 합쳐질 때의 절정은 노랑의 확장감으로 관객의 호흡을 멈추게 할 정도이며, 국화의 이미지화에 성공한다.

 
 
오죽(烏竹): 두 개의 대금이 자진모리로 산조를 연주하면, 긴 대나무를 든 한 선비가 나타난다. 푸르다 못해 검은 선비의 높은 기개, 철릭을 걸친 남성 무용수들 숫자를 늘여간다. 바닥에 대나무가 부딪히는 소리, 대나무를 집고 오르고, 비스듬히 서고, 대나무 잡고 위로 돌리기, 사선으로 집고 앉기, 바닥에 대나무 놓고 튀어 오르기 등 선비의 기개와 유연을 나타내는 다양한 자세와 진법이 동원되고, 구음이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대나무 한 곳에 모이면서 종결된다.

종무(終舞): 남녀 혼성무, 대자연의 조화 속에 음과 양의 만남, 사계절의 변화에 따른 선비들의 감정 조율, 이질에서 동질을 찾아가는 가야금과 바이올린의 만남, 사운드는 휘몰이 장단과 스킬연주의 어색함에서 이내 평정을 찾는다. 가볍고, 환한 분위기에서 독무, 듀엣, 군무로 변화를 주며 이 춤의 주제를 각인시킨다. ‘묵향’, 그윽한 품격 속으로 느리게 전진하며 출연진 모두는 자신의 빛을 발하며 마무리 된다.

 
 
 
 
『묵향』,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국립무용단의 향방에 걸쳐있는 이 작품은 형식과 스타일에 있어서의 변화는 예술감독 윤성주의 과감한 선택에 기인한다. 전통에 접근하는 방식에 있어서의 약간의 낯설음은 곧 친숙해질 수 있음을 전제한다. ‘묵향, 선비의 기개’ 에 밀착되는 안무 및 연출, 조명, 사운드, 영상, 의상 등이 빚어낸 감각적이고 현대적 풍경은 국립무용단이 국내외적으로 소통의 물꼬를 트고자하는 바람직한 시도임에 틀림없다.

/장석용 춤 비평가(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