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기억이 사물의 본질과 다를 수도 있다

이동원 안무의 『기억력 테스트, Memory Test』

기사입력 : 2014.08.21 17:25 (최종수정 2015.02.26 02:49)

▲이동원안무의『기억력테스트,MemoryTest』
▲이동원안무의『기억력테스트,MemoryTest』
안무가 이동원은 성균관대 무용과(현대무용 전공)와 동 대학 공연예술학 협동과정 석·박사 과정을 거쳐 무용과 초빙교수로서 무용실기와 공연예술학 전반을 연구하고 있다. 아지드 현대무용단 수석 무용수, 원 댄스 프로젝트 그룹의 대표로서 융·복합적 특성이 강한 안무작들을 발표하고 있다. 그는 독특한 개념의 움직임 개발과 독창적 상상력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기억력 테스트』는 공연예술의 특징을 잘 살린 작품이다. 그는 타 장르(뮤지컬, 넌버벌 퍼포먼스, 연극, 영화)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제2회 댄스 컬렉션’ 최우수상 수상, 2009년~2010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영 아트 프론티어 AYAF’ 선정 이후 중국, 싱가포르, 일본 등 다양한 국내·외 무용페스티벌에 초청되어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동원안무의『기억력테스트,MemoryTest』
▲이동원안무의『기억력테스트,MemoryTest』
▲이동원안무의『기억력테스트,MemoryTest』
▲이동원안무의『기억력테스트,MemoryTest』
중국 광저우 댄스 페스티벌에서도 관찰되었던 이동원은 춤꾼 부부로서도 잘 알려져 있다. 역동적이며, 창의적 소재의 춤들은 늘 파격을 불러왔다. 『다 잃어버리도록』, 『어떤 소리를 원하는가?』, 『일상을 위한 일상』, 『무엇을 바라보는가?』, 『그녀가 바라보는것』 등 그의 주요 안무작은 춤 기교의 우수성과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보여주는 집요함이 들어가 있다.

그의 작품은 주제에 따른 움직임 탐구, 즉흥적인 작용과 실험의 활용, 춤과 다른 매체 사이의 상호교류작용 등이 주요 특징으로 드러나며, 구성요소들 간의 상응으로써 실현해내고 있는 그의 예술 성향은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타 장르와의 조화로운 크로스오버는 독특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며 이동원만의 탄탄한 색채로 구축해나가고 있다.

『기억력 테스트』는 ‘당신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 사물의 본질과 다를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 감각 인지에 따른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인간은 몸속에 내재된 감각 때문에 반응이 가능하다. 반응과 동시에 신체는 하나의 어떤 것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다른 형태로 기억한다. 작품은 질문 형식을 띄며 촉발성 물질이 최초로 감각을 건드리게 되는 화두로 작용한다.

▲이동원안무의『기억력테스트,MemoryTest』
▲이동원안무의『기억력테스트,MemoryTest』
▲이동원안무의『기억력테스트,MemoryTest』
▲이동원안무의『기억력테스트,MemoryTest』
신체의 반응을 살피는 과학자처럼 감각의 반응과 동요, 그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기억이 신체에 박히는 과정은 정제되지 않은 형태의 움직임으로 표현된다. 질문들은 작품 전반에서 신체의 공감각을 자극할 수 있는 모든 것(움직임, 소리, 이미지, 글)으로써 흩뿌려진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신체는 또 다른 경험의 인지 속으로 뒤섞이면서 새롭게 반응한다.

반응된 감각의 혼란은 또 다른 기억의 각인으로 연결된다. 이것은 결국 주체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던져진 최초의 순간으로 회귀하게 된다. 순환논법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또 하나, 이 작품에서 주목 해야 할 무용수의 몸은 현존의 결정체로 기능한다. 즉 재현의 표현 매체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증발됨과 동시에 박제되는 기억의 찰나를 무용수의 몸이 증명하게 된다.

여섯 개의 시퀀스로 분할된 춤은 혼돈에 이를 정도의 잡학이 동원된 박식함을 드러낸다. 최초의 파장: 침묵과 고요가 팽창할 정도로 가득 메우고 있는, 그러나 결코 터지지도 넘치지도 않는 초월적 수평. 얕은 호흡 한 번에도 흔들릴 수 있는 공간. 불현듯 툭, 화두(A)가 던져진다. 최초의 파장이 일어나다. 침묵과 느림으로 빚은 진중함이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이동원안무의『기억력테스트,MemoryTest』
▲이동원안무의『기억력테스트,MemoryTest』
▲이동원안무의『기억력테스트,MemoryTest』
▲이동원안무의『기억력테스트,MemoryTest』
기억의 생성, 발아: A는 10.10(위도, 경도)에서 각자 다른 지점에 위치한 B, C, D...를 자신만의 감각으로 인지하기 시작한다. 상호작용이 시작된다. 교감, 교류, 서로에 대한 이해가 형성된다. 사물의 움직임에 대한 기억력 테스트라는 제사(題詞)는 투망에 잡힌 물고기처럼 요리되거나 기호나 상징으로 오랫동안 남아 이동원을 인지하는 붉은 목어(木魚) 역을 담당한다.

기억심화, 고립, 깊어짐: 기억은 홀로 침묵하며, 자생적 발화가 불가능하다. 건드려지지 않는 기억은 침잠한다. 깊어짐으로써 어딘가에 묻혀버리는 형상으로 소멸된다. ‘기억’, 말살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존재감을 발하기 위한 애절한 신호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상호작용에 의한 기억의 변형은 가치 있을 일말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기억’의 서글픈 존재방식이다.

다양한 기억의 양상 : 기억의 회상: A를 천천히 쓰다듬는다. 하나의 짧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낙타의 젖을 빠는 유목민이 있었다. 그는 눈이 먼 자로 자신의 나이는 알지 못하지만 젖 맛으로 몇 백 마리의 낙타를 정확하게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언제나처럼 숨을 한 번 천천히 들이쉰 후 손을 더듬어 낙타의 젓을 찾았다. 젖을 단단히 쥔 후 입을 갖다 댔다.

입술을 거쳐 액체가 혀에 닿는 순간 모든 기능이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목민의 입으로 들어온 액체는 그가 N.351로 칭하는 낙타의 젖이었다. N.351의 젖은 N.38보다는 온도가 낮고 N.103보다는 높은, 딱 그 중간치의 온도를 가지고 있다. 촉각을 앞세우고, 미각의 탐미로 판타지를 연출하는 ‘기억의 온도’의 분류방식이다.

▲이동원안무의『기억력테스트,MemoryTest』
▲이동원안무의『기억력테스트,MemoryTest』
‘N.351, 도착’, 다음 낙타를 향해 몇 발짝 옮겼다. 숨을 들이쉰 후 손을 더듬어 젓을 찾아 쥐었다. 잠시 머뭇거렸다. 필시 사람이었다. 그는 태연히 여느 낙타와 같은 방식으로 가슴을 빨았다. 살갗의 온도, 살갗의 밀도, 살갗의 냄새. 그는 그 순간 몸 속 저 깊은 곳에 있던 것들이 뭉텅이째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범람하는 기억의 밀물에 속수무책으로 휩쓸렸다.

찰랑찰랑. 유목민의 목젖에. 제 목을 가누지 못했던 그를 양 팔로 품는 일이 일상이었던 어떤 이. 찰랑찰랑. 유목민의 인중에. 당시 유목민은 어떤 이의 젖을 필사적으로 빨아 당기곤 했는데 그 때마다 젖에 핏물이 엉겨들었다. 찰랑찰랑. 유목민의 눈썹 뼈까지. 피비린내가 그의 치아 구석구석을 핥기 시작해도 어떤 이는 그저 그의 머리칼을 정성스레 쓰다듬어 주기만 했다.

찰랑찰랑. 유목민의 정수리를 비로소. 쿵. 쿵. 쿵. 쿵. 어떤 이의 심박 수는 늘 일정하게 진동했다. 이윽고 침수. 유목민이 침수된 곳은 양수 속과 닮아있었다. 그는 심해어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무릎을 꿇은 채 아주 깊은 잠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적막과 수압을 뚫고 유영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낙타 무리 속에서 사람의 가슴을 빨던 중이었다.

기억의 백시현상: 백시(白視) 현상, 화이트 아웃(White out)은 남극에서 주로 발생하는 광학 현상으로 물체간의 대비가 불가능해지면서 감각을 잃게 되는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넓게 퍼짐으로써 과도하게 빛이 확산되면서 사라지는, 그래서 일부 기억이 삭제되는 기억 상실의 찰나와 흡사하다. 비극적 상황으로의 전개는 희극적 아이러니를 낳는다.

마지막 질문: 수많은 객체 간에서 상호교류의 방식으로 기억되던 실존재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본인에게 던져질 차례이다.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다. 소위 순환논법, 자아와의 대면, 회귀 지점, 원점, 첫 질문이 던져진 지점, 결국은 원의 형태이다. 오감에 이은 텔레파시, 그 다음 단계에 이르는 순환은 크로스 오버에 의해서 파생되는 순간의 예술을 존중한다.

▲이동원안무의『기억력테스트,MemoryTest』
▲이동원안무의『기억력테스트,MemoryTest』
이동원의 『기억력 테스트』는 그가 느끼는 미학적 덩어리들을 블루 벨벳의 부드러움과 기억에 관한 현학적 대사, 연극적 구성의 묘미와 빛의 조화, 사운드의 신비로움이 차원을 달리하는 젊은 춤꾼들의 생각이 담겨있는 춤들로 현대무용의 존엄을 지켜주었다. 은근과 끈기로 철학적 테제를 해결하고, 가볍게 문제를 비틀어 보면서 세상을 밝게 만드는 자세는 바람직하다.

/장석용 객원기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출연/김준희, 전보람, 박아영, 양정민, 임소정, 유은혜, 김상각, 김범중, 김현아, 세르지미, 이동원, 드라마투르기/장서현, 사운드 디자인/세르지미(Sert Jimmy), 특별출연/김현아, 조명 디자인/류백희, 무대 디자인/심재욱,무대감독/조윤근, 의상 컨셉/김준희, 사진/이현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