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용·손은교·최정식·김수범 네 안무가의 역작, 광휘(光輝)

2014 M극장 포스트 시즌의 ‘신진안무가전’

기사입력 : 2014.10.05 11:05 (최종수정 2015.02.26 02:28)

포이동 M극장이 기획한 포스트 시즌의 첫 번째 무대 ‘신진안무가전’에 출품된 네 편의 현대무용은 잡다한 공연예술제의 거북하고 연구가 미숙한 허상을 꼬집는 깔끔한 수범(秀範)으로 기록된다. M극장은 지난 10여 년간 다양한 장르의 의미있는 춤작가들의 활동을 지원해왔고, 그들의 작업은 여러 나라에 한국 현대무용의 척도로 제공되었다.

‘신진안무가전‘은 김하용(Factory 1+1+1 무용단 객원활동) 안무의 『잉여, Superfluous』, 손은교(칼라 댄스 카니발 조안무) 안무의 『놂, 놂, 놂, Playing, Playing, playing』, 최정식(모던 테이블 단원) 안무의 『나무가시, Namugasi』, 김수범(현대무용가) 안무의 『생생한, Vivid』는 국가 경쟁력을 갖춤 작품들로, 춤꾼들은 검투장에 나선 검사의 비장한 모습처럼 보였다.

▲김하용안무의『잉여,Superfluous』
▲김하용안무의『잉여,Superfluous』
김하용 안무의 『잉여』는 ‘잉여인간’의 의미를 차용한다. 투르게네프의 단편소설 ‘잉여인간의 일기’(1850), 손창섭의 ‘잉여인간’(1958), 유현목 감독의 영화 ‘잉여인간’(1964)에 이은 무용작이다. 보헤미안과 은둔의 사색자, 비주류가 중첩되는 인간이 이 작품의 주인공의 이미지다. 안무가는 세상의 풍요와 자신의 무기력한 현실을 ‘남아도는’ 사람으로 표현한다.

『잉여』에서 사내(김하용)는 인텔리겐차의 퇴행적 인물 혹은 사회의 불의에 침묵하는 방관자의 입장을 보인다. 독재, 경제, 사회적 억압은 사회를 감옥처럼 만들어버린다. 개인은 침묵하고, 자신을 좁은 공간에 가두어 버린다. 그 공간에서 지성인들은 무지갯빛 꿈을 꾼다. 안무가는 절망적인 상황을 오히려 아름답게 묘사하며, 자신은 쓸모없는 사람이 아님을 밝힌다.

▲김하용안무의『잉여,Superfluous』
▲김하용안무의『잉여,Superfluous』
사내는 휘파람을 불며 상자 속, 추억의 인자들을 끄집어낸다. 사내의 색종이 작업, 잠옷같은 긴 언더웨어 여인들(육난희, 이현주)의 포옹, 방관의 시작이다. 굵고 장중한 느낌의 느림, 휘파람 소리로 이어진다. 정 근 작곡의 동요 ‘텔레비전’이 등장하고, 이어지는 경쾌한 바이올린과 피아노 사운드, 하이키 조명, 바람개비가 만들어지며 『잉여』는 인간성 회복의 희망을 쏜다. 손은교 안무의 『놂, 놂, 놂』은 ‘과거에 놂’, ‘현재에 norm’, ‘미래에 놂’이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재능과 끼, 역동성, 동화적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윤극영 작곡의 ‘따오기’에서 출발한 춤은 게임을 보는 듯한 차림새로 여성 삼인(손은교, 이혜원, 이인아)의 폭발적 역동성을 보여준다. 비교적 어두운 톤의 조명 아래서 춤은 그리움, 동경, 슬픔의 ‘고무줄놀이’를 보여준다.

▲손은교안무의『놂,놂,놂,Playing,Playing,playing』
▲손은교안무의『놂,놂,놂,Playing,Playing,playing』
함이영 작곡 ‘우리나라 꽃’이 이어지면서 이 작품은 희극성을 더한다. 강력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삼무사의 ‘유년의 추억’에서 ‘미래의 꿈’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슬픔과 기쁨이 혼재되어 있다. 서정과 낭만을 부르는 빗소리, 슬픔은 배가되고 놀이는 시가 된다. 안개 같은 추억을 벗어나면 현실로 들어선다. 손은교의 ‘몸 시’는 정제되고 구체적 조형성을 띈다.

▲손은교안무의『놂,놂,놂,Playing,Playing,playing』
▲손은교안무의『놂,놂,놂,Playing,Playing,playing』
손은교는 현대무용의 철학적 이미지성을 우회한 동화적 소통의 몸짓으로 현실을 직시하는 동행을 강조한다. 안무가는 동요의 클래식화라 비유할 수 있는 ‘단순한 것’의 미학적 성취를 이루면서 작품을 감정과 이성의 균형을 이루면서 미래에 대한 의지와 자신에 대한 규범을 스스로 만들어 내었다. 자신의 안무 중심을 ‘난해의 숲에서 벗어난 몸 시’에 두었다.

▲최정식안무의『나무가시,Namugasi』
▲최정식안무의『나무가시,Namugasi』
최정식 안무의 『나무가시』의 핵심은 ‘가시 돋친 꽃이 더 아름답다’이다. 부댖기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 인간관계도 서로 아옹다옹하며 살아감을 느리게 유영하듯 쌍생아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지윤과 안무가는 연결의 의미를 강조하며 사선으로 느리게 전진한다. 느린 현(絃)은 인연과 관계, 전통적 유대의 필연을 상징하며, 교훈의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 입장을 취한다.

▲최정식안무의『나무가시,Namugasi』
▲최정식안무의『나무가시,Namugasi』
구음은 춤의 깊이감을 조성하고, 행위는 시각에 호소한다. 탁월한 빛의 이용은 춤의 건강미와 정공의 테크닉을 보여준다. 춤 장르만이 해낼 수 있는 춤 수사로, 고도의 집중을 끌어내는 방식, 끈으로 연결된 상징성은 자신의 껍질을 벗고, 환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맺고 풀어감의 이치를 깨우치는 자세는 유연하며, 시간과 파장의 함수관계를 서술적으로 전개시킨다.

안무가는 방어를 서술하는 방식에서 갈등을 만들어내며, 무의식에 존재하는 우리들의 모습들을 진솔하게 보여준다. 작용과 반작용, 공격과 방어에서 오는 미세한 움직임들을 자유로움과 결부시킨다. 나만의 개성을 보여주며, 하늘을 향해 자유를 구가하고, 달리고, 노력하고, 독립춤꾼의 험난한 일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격렬하지만 느긋하게 보여준 작품이다.

▲김수범안무의『생생한,Vivid』
▲김수범안무의『생생한,Vivid』
김수범 안무의 『생생한』은 네 명의 젊은이들(강 혁, 정 건, 손대민, 변준혁)이 ‘그 일에 대해 속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하는 형식을 취한다. 몸으로 풀어낸 이야기는 소극장에서 벌이는 서사적 틀을 갖는다. 그들의 춤의 결은 전통에서 현대를 오간다. 자연에서 찾아낸 시간의 흐름은 선율과 어울린다. 서고 누운 자세는 교차되고, 상체탈의, 미세한 동작들이 감지된다.

그들이 저지른 일들은 음의 유희 속에 비교적 어두운 일면을 갖는다. 사연들은 다양성을 가지며, 역광으로 도발한다. 터치, 브리지에서 춤 그룹의 동인(動因)이 같음을 느끼게 한다. 호기심을 유발하는 연행(演行)은 강박같은 사운드의 도움을 받아 빛나고, 구름 위를 거니는 듯한 판타지를 창출한다. 눈, 손, 발 등에서 묘사되는 고행의 몸짓들이 쏟아진다.

▲김수범안무의『생생한,Vivid』
▲김수범안무의『생생한,Vivid』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에서 저질러졌던 연유가 밝혀지고, 보라색 꿈은 더욱 생생해진다. 원색으로 치장되었던 꿈들, 한 몸으로 불살랐던 과거, 음과 이미지로만 남는다. 싱그러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오늘’과 ‘현재적 모습’은 뜨거운 여름 같았던 ‘어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생생한』은 김수범의 뜻에 따라 휠 수 있는 여력을 보여준 활이었다.

포스트 시즌의 ‘신진안무가전’에서 네 안무가 김하용, 손은교, 최정식, 김수범은 경연에 버금가는 다채롭고 감각적인 작품을 선보였다. 그들이 키 큰나무의 세월, 통 넓은 나이테의 인내를 헤아리는 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테크닉이 세월을 이길 수는 없다. 누군가는 긴 춤 터널을 지나 그들의 작품들이 현대무용이 발전하는데 커다란 빛이 되었다고 할 날이 올 것이다.

/장석용 객원기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