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마다 묻어나는 열정의 잔향

[무용산책] 서연수(한국무용가, 모헤르 댄스컴퍼니 대표)

기사입력 : 2014.10.08 15:17 (최종수정 2015.02.26 02:26)

신들린 듯, 때론 부드럽게

한국 여성의 심성 담아내

3대에 걸친 여성 탐색도

▲서연수안무'레드심포니'
▲서연수안무'레드심포니'
‘정열의 춤꾼’ 서연수(徐緣水)는 1982년 부 서성유와 모 김춘자 사이에서 1남2녀 중 둘째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두 살 위의 언니와 아홉 살 어린 남동생 사이에서 ‘여성’과 ‘여자’문제에 대해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으며, 이후 그녀의 ‘여자’에 대한 연구는 무용단의 이름과 안무작 제목에 이르는 근간을 이룬다.

예술을 끔찍이 사랑하는 어머니에 의해 그녀는 유년시절부터 10여 년 간 피아노와 미술을 배우다가 우연히 접한 발레와 한국무용에 매료돼 무용가의 길을 걷게 된다. 자신의 개성을 살린 창작무를 살리도록 보살펴준 스승 김운미 교수는 ‘틀림이 아닌 다름’의 예술을 주지시켰다. 아직 춤은 늘 그녀에게 설렘, 흥분, 긴장감, 새로움을 만드는 묘약이다.

녹차 빛, 여린 여인의 모습의 그녀는 노량진초, 대방여중, 덕원예고, 한양대 무용학과 및 동대학원, 한양대 박사과정을 수료한 한국무용계의 불굴의 춤꾼 중 하나다. 쿰 댄스 컴퍼니 단원으로 단체 생활을 익힌 뒤, 모교인 한양대 무용학과, 덕원예고 등에 출강하면서 자신의 무용단 모헤르 댄스컴퍼니 이름을 걸고 2014년 가을 제1회 댄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서연수안무'레드심포니'
▲서연수안무'레드심포니'
스페인어로 모헤르(MUJER)는 ‘여자’를 뜻한다. 그녀의 무용단 이름은 모헤르에서 따온 것이다. 성공과 승리의 인자를 소지는 그녀는 한국 여성의 지긋한 심성 표현과 동시에 춤추는 집시 여인 같은 화사(華辭)와 신들린 듯한 역동적 춤을 구사한다. 그녀는 ‘여성성’에 대한 진지한 탐구와 여성 자체에 대한 아름다움을 미학적으로 격상시키는 작업들을 계속해오고 있다. 또한 모헤르는 자신의 끊임없는 탐구를 뜻하기도 한다.

서연수는 『잔향』(2007)을 데뷔작으로 하여 『녀ᄌᆞ』, 『두번 째 녀ᄌᆞ』(PAF 신진안무가상), 『참긴말 1』, 『참긴말 2』, 『참긴말3』, 『레드 심포니』(PAF안무상)에 이르는 여성심리 연구에 밀착되는 작품으로 자신의 탁월한 기량과 존재감을 보여준 안무가다. 자신의 내면을 관조하며 태동시킨 『녀ᄌᆞ』 연동작은 할머니, 어머니, 자신에 이르는 삼대에 걸친 여성을 탐색한다.

▲서연수안무'잔향'
▲서연수안무'잔향'
▲서연수안무'잔향'
▲서연수안무'잔향'
▲서연수안무'잔향'
▲서연수안무'잔향'
『잔향』(殘香)은 조모의 별세를 당하고 느낀 아픈 기억의 울림을 모티브로 한다. 죽은 자를 두고 살아남은 자들의 비탄의 모습들, 그 울림이 죽음에서부터 시작된다. 살아있는 두 남자,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와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 모두 슬픔에 젖어있다. 슬픔은 정가로 표현되고, 적의(赤衣)의 서연수가 죽은 영혼인 할머니의 모습으로 설정된다.

‘잔향’은 가슴속 그 기억에 대한 울림으로 힘들어하는 ‘살아 있는자들’(서연수의 가족들)을 상징한다. 김동률의 가요 ‘잔향’은 ‘소리없는 그대의 모습/눈을 감아도’로 시작되는 가사가 무음정가로 도입부와 마지막에 가요로 사용된다. 서연수의 울림이 있는 춤은 열정 속의 눈물과 가족의 상실로 인한 회한의 정을 여성적 섬세함과 진지함으로 아픔을 극대화 시킨다.

▲서연수안무'녀자'
▲서연수안무'녀자'
▲서연수안무'녀자'
▲서연수안무'녀자'
『녀ᄌᆞ』는 자신에 대한 탐구, 여성에 대한 탐구, 자기 자신을 반추하는 작품이다. 안무가는 섬세한 여성적 감성으로 자신과 주변의 여성들이 가족 내에서 차지하는 위치, 역학관계를 감각적으로 들추어내어 예상을 뛰어넘는 섬뜩할 정도의 이성적 접근을 한다. 이 작품은 춤 작가로서 서연수의 미래의 여성연구와 춤의 향방을 가늠케 하는 소중한 기록이다.

연작의 가능성을 보여준 이 작품은 서연수가 10년 이상을 쿰 무용단의 주역으로서 성장한 춤의 나이테를 보여주며, 여성의 감수성과 건강한 사고에서 분출된 춤의 진정성을 담고 있다. 『녀ᄌᆞ』는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신비적 아름다움과 춤 연기자들이 갖추어야할 미학적 덕목을 보여준다. 서연수 춤 메쏘드의 새로운 방법론이 잉태되는 즐거움을 준 작품이다.

▲서연수안무'두번째녀자'
▲서연수안무'두번째녀자'
『두번 째 녀ᄌᆞ』는 ‘여성 본래의 청아하고 수수한 모습으로 돌아가자’를 주제로 삼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현대여성들의 미적 규범에서의 일탈과 비뚤어진 사고방식을 비판하며, 여성은 그 존재만으로도 아름다운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천명한다. 그래서 제목도 ‘여자’의 옛말인 ‘녀ᄌᆞ’를 사용하여 일탈된 여성들의 현실을 ‘힐란의 춤’으로 과감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전통을 통해 새로운 표현력을 보여준 이 작품은 안무자의 바람직한 시선과 열정을 보여준다. 교훈, 현실고발, 자신의 입장 등이 때론 격정적 양상과 코믹성을 유발하면서 나타난다. 그렇지만 늘 냉정하게 춤판을 조율해내는 안무가는 즐거움의 한가운데에 있다가도 강약을 조율하며 에너지를 분산시킨다. 신나게 춤추다가 제의 같은 엄숙함으로 마무리하는 자세는 아름답다.

『참긴말 1』, 『참긴말 2』, 『참긴말3』은 듀엣으로 이루어진다. 이 작품들은 남녀 사이에 할 수 없는 말, 너무 가까워 떠난 여자와 잡고 싶은 남자의 마음을 그려낸다. ‘말할 수 없는’에 담겨있는 깊은 감정이 ‘참 긴말’로 나타난다. 게임을 시작하듯 글자판이 등장한다. 여성은 글이 없는 쪽으로 판을 뒤집고 남성은 글이 있는 판 쪽으로 뒤집으며 대화를 시도한다.

버전이 바뀌면서 음악과 소품은 동일하지만 화법도 상이하며, 집중도도 다르게 해석이 된다. 윤영식, 강요찬, 이영일로 파트너가 바뀌며 관객과 소통하는 분위기와 작품의 순서도 변화된다. 서연수는 다양한 방법으로 여성의 입장을 옹호한다. 안무가는 유희의 형식을 빌어서 자연스럽게 관객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찾으며 담론을 조성한다.

▲서연수안무'레드심포니'
▲서연수안무'레드심포니'
『레드 심포니』는 『녀ᄌᆞ』의 연작이다. ‘요즈음 여성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작품이다. ‘레드’를 여성, ‘심포니’를 몸으로 설정하고, 이들의 조우로 살아가면서 잊고 지냈던 여성의 감성과 시간들을 행복이라는 삶에 빗대어 되찾고자 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자신을 잃어가고 현실의 삶 속에 쫓겨 가는 자신에게 가슴 속 깊은 그 곳에서 ‘삶은 자신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외친다.

그 삶은 행복이라는 의미로 요동친다. 라이브 음악을 통해 다 같이 아우르고 여성으로서 잃어야만 했던 지난 시간을 위로한다. 여성들과 함께, 여성의 목소리를 내고, 앞으로 행복한 여성들의 순간을 그려나가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안무가는 여성들만이 이루어내고 보여줄 수 있는 선율, 자신의 당당한 삶, 여성은 여성으로서의 삶을 아름답게 찾아가길 원한다.

안무작에 넣지 않았던 『녀ᄌᆞ-작은이야기』는 『녀ᄌᆞ』의 연작으로 중극장에서 작은 소극장으로 규모가 이동되면서 소극장에 맞게 관객과 소통을 시도하면서 작품을 수정하고 거기서 말할 수 있는 안무가 이야기가 첨가되면서 버전을 달리한 작품이다. 여성들과 함께 만들어낸 작품이다. 서연수의 춤깔의 변화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춤으로 펼치는 잔잔한 이야기 꾼, 서연수는 부드러운 머플러의 유선으로 춤을 음미하는 댄서다. 그녀는 앞으로도 주머니 속의 작은 이야기들을 끄집어 낼 것이다. 응축된 ‘여성’ 소재의 작품들이 그녀의 내면을 살찌게 하고, 그녀는 조금씩 작은 철학자가 되어갈 것이다. 바람이 불어도 가볍게 흔들리면서 명멸하는 춤꾼들 중에서 긴 생명력으로 자기중심을 잡아갈 것이다.

/장석용 객원기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