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진정학 가치는 시대 이끄는 혁신 모티브 제공

[이승우와 함께하는 변화혁신(7)] 인문학의 본질은 혁신이다

기사입력 : 2015.03.11 09:55 (최종수정 2017.02.07 00:35)

 
 
기술적 진보도 인문학적 철학의 바탕 있어야 가능

취업은 주체적 삶 살 수 있는 경제적 자유에 의미



3월이다. 이미 새해가 밝은 지 두 달이 지났지만 대학생 청년들에게 3월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대학에 진학한 신입생들은 대학생활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새학기에 대한 설렘이 크다. 반면에 이제 졸업을 앞둔 4학년 학생들의 머릿속은 많이 복잡하다. 졸업 후의 불확실한 미래가 불안으로 다가든다.

바야흐로 선배들로부터 말로만 전해 듣던 고난의 시기에 접어든 것이다. 취업을 할까, 창업을 해 볼까, 아니면 대학원에 진학해서 더 공부를 할까 등등. 졸업과 함께 사회에 나가기 위한 선택을 해야 하는데 그 선택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요즘 분위기로 봐서는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취업을 위해 필요한 엄청난 스펙을 쌓는 것도 부담스럽고, 특별한 기술과 재능도 없는데 막연히 창업의 가시밭길로 뛰어들 수도 없다. 대학원 진학도 고려할 수는 있지만 공부를 더해서 석사·박사가 된다고 한들 요즘시대에 미래를 보장받을 만한 뾰족한 대안은 아니다. 말 그대로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인문계 출신 학생 실업률 높아

그러다보니 각 대학에 개설된 진로상담센터에는 일명, ‘새학기 증후군’을 호소하는 학생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방학을 보내고 3월 개강을 맞아 심리적 불안이 높아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월 말 구인구직 포털에서 대학생 49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의 66.1%가 '의욕 저하 및 무기력증'(24.2%), '수면 장애'(17.7%), '피로감'(17.4%), '우울감'(17.1%) 등의 순으로 새학기 증후군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더 큰 문제는 오늘날 점차 심해져 가는 인문계 출신 학생들의 고통이다. 인문계 졸업생 90%가 놀고 있다는 '인구론'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그 정도는 심각하다. 모 일간지의 조사에 따르면 소위 'SKY'라 불리는 상위권 대학 인문계 출신 학생들의 취업률이 50%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급기야 대학교 졸업식장의 현수막에는 ‘연대 나오면 뭐 하냐, 어차피 백수인데…’라는 자조 섞인 유머도 등장했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앞으로도 더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기업의 대졸사원 채용 현황을 보면 제조업과 정보기술(IT) 계열의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과거 인문계 출신들로 가득 채워졌던 금융권과 공공영역에 이르기까지 이공계 출신을 선호하는 현상이 눈에 띄게 두드러졌다.

자유 추구를 위한 방법론 배워

기업과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요구가 달라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인문학이 시대의 유행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인문학을 공부한 학생들의 일자리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맞아 인문학을 전공한 학생들에게 또 다른 혁신이 요구되고 있다.

지난해 모 대학에서 ‘취업실전전략’이라는 이름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수업은 대학 졸업반인 4학년 학생들로 꽉 채워졌고, 최근의 어려운 상황을 반영하듯 학생들은 졸업 후 취업을 위해 다양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당시 학생들과의 토론 주제는 ‘취업을 위해 인문학이 왜 필요한가?’였다. 어느 학생이 대답했다. 주요 대기업에서 인적성 검사와 함께 인문학을 소재로 한 에세이를 요구하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실제로 최근 삼성, 현대, LG, SK 등 대기업 계열사를 중심으로 역사적인 사건을 재해석하고 자신의 관점에서 서술하는 방식의 에세이를 채용시험에 반영하고 있다. 취업에 목마른 학생들이 기업의 요구사항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현실이다.

 
 
다음으로 ‘그럼, 도대체 인문학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학생들은 잠시 말을 멈추고 서로 얼굴만 바라봤다. 인문학이 취업을 위해서 중요하기는 한데, 그 실체와 본질에 대해서는 그리 깊이 생각해보지 않는 듯했다. 인문학(人文學, humanities)의 사전적 의미는 자연과학(自然科學, natural science)의 상대적인 개념으로서, 인간과 관련된 근원적인 문제나 사상, 문화 등을 중심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며 그 범주에는 언어·언어학·문학·역사·법률·철학·고고학·예술·비평 등의 학문을 포함하고 있다.

르네상스 거치며 기술 큰 발전

흥미로운 것은 '인문(교양)과목'의 뜻으로 해석되는 'Liberal Arts'라는 영어 표현이었다. 학생들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왜 인문학을 가르치는 교양과목의 영어 표현에 자유를 나타내는 'Liberal'이라는 단어가 쓰이게 되었을까? 학생들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답은 간단했다. 인문교육을 나타내는 Liberal Arts는 인간이 자유를 추구하기 위한 방법과 기술을 배우는 과정이라는 뜻이다. 핵심은 바로 인간이 원하는 '자유'다. 인문학에서 말하는 인간은 속박된 노예가 아닌, '자유로운 인간' 그 자체를 의미한다. 오늘날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인문학이 주목받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그렇다면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인문학을 통한 '자유'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를 생각해 보자. 우리가 자유를 얻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단순히 신체적으로 구속(拘束)받지 않는다는 것을 뜻할 수도 있고, 정신적으로 억압받지 않는 자유로운 상태를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현대산업사회에서의 자유는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된다. 바로 '경제적 자유'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체제에서 우리가 인간다운 삶을 유지해갈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갖추는 것이 바로 경제적 자유를 획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취업은 그저 학교를 마치고 사회에 나와서 돈을 번다는 개념이 아니라 오랫동안 부모에게 의존하며 살아온 삶에서 경제적인 독립을 통해 자신이 주체가 되는 삶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인문학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의 성향은 훨씬 더 혁신적인 마인드에 근접해 있다고 할 수 있다. 혁신이란 결국 과거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더 높은 인간의 자유를 찾는 일련의 과정이다. 따라서 이를 위해서 끊임없는 도전이 요구되고, 더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값진 에너지 제대로 활용 못해

중세시대의 암흑기를 떨쳐내고 14∼16세기에 걸쳐 서유럽의 문명사에 나타난 문화운동인 르네상스(Renaissance)는 근대문화의 발전을 가져온 혁신운동의 하나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인간성의 해방과 인간의 재발견을 통해 혁신의 눈을 뜨게 해준 원동력을 제공한 것이다. 이러한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면서 인류의 문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과학기술과 문화예술의 꽃이 피어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오늘날의 디지털 혁신을 가져온 기술의 근원에도 역시 이러한 혁신문화가 영향을 끼쳤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인간생활을 위한 기술의 진보가 인문학적 철학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시대를 변화시킨 혁신가들의 모습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제 인문학을 공부한 많은 청년들이 앞으로 더 큰 용기를 갖기를 바란다. 더 많이 도전하고 더 많이 실행하고, 더 새로운 것을 꿈꿔도 좋다. 오늘날 산업현장에서 인문계 출신이 홀대받는 것은 인문학의 힘이 약해서가 아니다.

문제는 그렇게 값진 에너지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서 그렇다. 인문학은 그저 힘든 시간에 잠시 동안의 고통을 덜어주는 '힐링'의 도구가 아니다. 그 자체로 아주 강력한 혁신의 힘을 갖고 있다.

이승우 변화혁신연구소 소장
이승우 변화혁신연구소 소장
아쉬운 것은 학교공부에만 관심을 갖던 인문학 전공자들이 사회에 나가기를 꺼리는 성향이 있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새로운 환경에 맞닥뜨리고 현실에서의 어려움을 이겨내기를 두려워하기도 한다. 이는 진정한 인문학도의 모습이 아니다. 인문학은 책에서 배우는 것 그 이상으로 우리 인간의 삶 자체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그렇기에 삶의 현장을 외면한 인문학 공부가 취업을 비롯한 경제활동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인식이 굳어지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황을 반전시키는 것도 오로지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풀어내야 할 몫이다. 어설프게 착한 모습이어서는 안 된다. 시대를 움직이는 혁신의 모티브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인간사회의 진보를 이끌어내는 인문학의 본질이다.

이승우 변화혁신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