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분리된 교육 뛰어넘어야 '노마드'형 인재 육성

[이승우와 함께하는 변화혁신(16)] 교육의 변화, '성(城)' 쌓지 말고 '길'을 내어라

기사입력 : 2015.06.24 07:37 (최종수정 2017.02.07 00:36)

 
 
정권 바뀌면 포장만 바꾼 정책으로는 변화에 한계

교육을 소비자 중심으로 개편하는 대전환 있어야

"성(城)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중국의 수·당 시대에 유목민들이 이루었던 제국 중에서 대표적인 '돌궐' 제국을 부흥시킨 명장 '톤유쿠크'의 비석(碑石)에 쓰여 있는 문구라고 한다.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먹을 것과 생필품이 부족했던 유목민들이 이동생활을 하며 농경민들과 교역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가축에게 먹일 물과 풀을 찾아 이동하며 사는 것이 그들 본래의 모습이었다. 그 와중에 어쩔 수 없이 크고 작은 전투를 치르며 그들은 생존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해 왔다. 유구한 중국 역사의 한 편을 장식하며 끈질기게 그들만의 역사를 만들어낸 유목민들의 생명력, 그것은 바로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내며 이동하는 것이었다.

성(城)을 쌓는다는 것은 곧 머무름, 정체됨을 의미한다. 움직이지 않으면서 남들로부터 안전하게 자신을 지켜줄 보호막을 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결론은 간단히 두 가지로 요약된다.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계속적으로 막아내기에만 급급하거나, 아니면 내부적인 원인으로 인해 스스로 무너지는 것이다. 이는 곧 더 이상 생존할 수 없음을 뜻한다. 그래서 제국시대의 유목민들은 성(城)을 쌓고 안주하는 것보다는 그들의 생존을 위해 고통이 따르더라도 길을 내어 이동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비슷한 의미로, '고인 물이 썩는다'라는 속담처럼 물이 흐르지 못하고 머물러 있으면 결국은 썩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또한 잘 알고 있다.

오늘날의 한국교육은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고민할 시점에 이르렀다. 아니, 새로운 지식환경의 변화는 이미 우리 곁에 성큼 다가서있고 이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기도 시급하다. 바로 21세기의 새로운 유목민, 디지털 노마드(Nomad)의 시대를 맞아 우리의 교육이 당면한 과제이기도 하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저서 '차이와 반복'(1968)에서 '노마디즘(nomadism)'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래로 '노마드'는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대변하기에 가장 적절한 표현이 되었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의 유목민이 목축을 위해 물과 풀을 따라 옮겨 다녔다고 한다면 오늘날의 유목민은 디지털 기기를 들고 다니며 시공간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노마드'란 공간적인 이동의 제약뿐만 아니라 버려진 불모지를 새로운 생명의 땅으로 바꿔 가듯이 한자리에 앉아서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어 가는 창조적인 행위를 지향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오늘날 교육을 통해 길러내고자 하는 미래인재의 모습, 바로 '도전정신을 갖춘 창의인재'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의 교육은 과연 현대의 삶을 온전히 살아갈 '노마드'형 인재를 길러내기에 적합한가에 대한 질문이 뒤따른다. 아쉽게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그리 명쾌하게 할 수가 없다. 혹시나 우리가 앞으로 뻗어나갈 길을 내지 못한 채, 너무도 단단한 '성(城)'을 쌓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지난 수년간 교육당국은 미래사회를 이끌어갈 창의인재 양성을 정책비전으로 제시하며 수많은 연구와 현장활동을 전개했다. 창의교육, 진로교육, 자유학기제 도입 등 제도적 변화를 통해 '노마드' 세대들이 앞으로의 직업세계를 대비할 교육과정이 마련되었고, 이에 따른 예산투입의 양도 상당했다. 그러나 여전히 뭔가가 빠진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니, 각 부문에서 열심히 하기는 하는데 뭔가 연결이 잘 되지 않는 느낌이라고 하는 게 맞다. 일선의 초·중·고 학교는 학교대로, 대학은 대학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그저 각각이 바라보는 관점에서 교육활동을 수행한다.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미래인재의 상(像)을 공유하고, 이에 따라 일관성 있게 연결된 교육활동이 이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각 교육기관별, 교육주체별로 사업성과를 드러내기에만 바쁘다. 결국 학교교육을 마치고 대학의 고등교육을 거쳐 평생교육의 단계로 접어드는 과정에서 그 맥락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 허점이 보인다.

일러스트=문지현 기자
일러스트=문지현 기자
이는 고스란히 교육소비자인 학생들과 우리 모두의 피해로 드러난다. 왜 초·중·고교의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마친 학생이 대학에 진학하면서 가치관의 혼동과 갈등을 겪게 되는가? 왜 대학교육을 제대로 받은 학생이 사회에 나오는 순간부터 일자리를 갖지 못하는 무능력자로 전락하는가? 왜 회사에서 수년간 일을 해온 사람이 회사를 떠나는 순간 동네 치킨집 차리기를 고민해야 하는가? 결국은 일상의 삶과 분리된 교육, 교육을 위한 교육의 반복적 패턴이 아직도 우리의 의식속에 단단한 성(城)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노마드' 시대의 주인공인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현장의 교사가 미래 삶의 터전이 될 산업현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산업현장은 미래사회의 변화가능성에 대한 통찰(Insight)을 학교교육에 제시하지 못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교육과 직업의 미스매치(mismatch)를 조정하고 방향성을 잡아줘야 할 교육당국이 제대로 된 나침반의 역할을 해주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21세기 창의와 융합의 시대를 맞아 교육의 경계도 점차 허물어지고 있다. 정해진 교실 안 울타리에 모여서 주어진 시간, 정해진 사람들과 교류하던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 소셜네트워크와 미디어 서비스의 혁신으로 인해 이제는 모든 장소에서 모든 사람들과의 교류가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인터넷의 발전과 함께 성장해온 소위, 넷세대(Net Generation)는 지금의 기성세대와는 그 진화의 속도부터 달랐다. 이렇듯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진 우리 아이들을 기존에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성(城) 안에만 가두어서는 안 된다. 이동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앞으로 겪어나갈 사회에 대해 더 많이 알려주어야 하고 스스로의 성찰을 통해 자신의 길을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21세기 '노마드'형 사회인으로 성장할 아이들을 최일선에서 접하는 사람들이 바로 학교현장의 교사들이다. 인지적,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아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 역시 교사들이다. 그래서 교사들이 먼저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학교교육의 성벽(城壁)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리고 지역사회와 기업이 이러한 교사들의 노력을 응원하고 힘을 보태야 한다. 대학은 학교변화의 움직임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이를 일반화할 수 있어야 하며 정부는 교육정책의 패러다임을 교육소비자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의 교육이 산다. 각 부문이 서로 연결되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길'을 내어야 한다.

이승우 변화혁신연구소장
이승우 변화혁신연구소장
"It takes a whole village to raise a child." "한 명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 마을 전체가 합심하기 위해서는 결국 마을 전체로 이동할 수 있는 '길'이 있어야만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한국교육의 변화, 그것은 때를 바꿔가며 다른 이름으로 풀어놓는 교육정책이 아니다. 이미 우리가 갖고 있는 학교, 대학, 산업의 각 부문들이 유기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길'을 내고 그 길을 통해 사람과 자원이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조화하는 것이다. 이제는 과감하게 '성(城)'을 부수고 미래교육을 향한 '길'을 내기 위한 고민을 함께 시작해야 할 때다.

이승우 변화혁신연구소장(www.ci21.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