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70주년 앞두고 '시간의 역사'로 역사의식 고취시킨 감동의 무대

[무용리뷰] 묵간(墨間), 열일곱 번째 이야기-안지형 안무의 『마지막 수요일』, 김수기 안무의 『우리형』 , 박진영 안무의 『바람의 기억, 강물에 흐르다』

기사입력 : 2015.07.16 13:38 (최종수정 2015.07.16 13:38)

최근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 쿰 무용단(예술총감독 김운미, 한양대 예술체육대학 학장)의 ‘묵간, 열일곱 번째 이야기’의 주제는 ‘시간의 역사’이다. 안지형 안무의 『마지막 수요일』, 김수기 안무의 『우리형』, 박진영 안무의 『바람의 기억, 강물에 흐르다』는 각기 위안부 문제, 독립군 이야기, 대한민국의 근대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한양대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한 춤꾼들을 주축으로 한 ‘쿰 무용단’의 도도한 춤 물결 속에 전시된 작품들은 한국 창작무용 산실의 옹호를 뒷받침할 근거를 제공하였다. 다양한 주제와 양식을 소화해온 이 단체는 압도할만한 에너지로 무장한 쓸모 있는 춤꾼들을 배출해왔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의기투합한 안무가들은 주제에 걸 맞는 의미있는 작품들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안지형 안무의 『마지막 수요일』
안지형 안무의 『마지막 수요일』
안지형(ARTE H 아트디렉터) 안무의 『마지막 수요일』은 일제하, 강제 차출된 조선 여성들의 성노예문제를 품격 있게 예술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현재형으로 진행되고 있는 매주 수요일 낮 12시 일본대사관 앞의 수요 집회, 구십 전 후의 위안부 할머니들의 절규를 안무가가 포착, 잊혀져가고 있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해결과 희망, 의지를 감성적 춤 언어로 보여준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이 작품을 헌정한 안지형은 집회에 버금가는 의지와 열정으로 작품을 구성했다. 안무가 역시 1992년 1월 8일을 시작으로 2015년 현재까지 24년 동안, 매번 마지막 집회가 되기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과 의지를 같이 공유한다. 변방의 시위 정도로 여기는 일본 정부, 역사의 시간 앞에 당당히 맞선 ‘나비’(위안부)들의 희망이 펼쳐진다.

안지형은 ‘순수를 유린당한 채 버텨야만했던 시간/관심과 무관심의 경계선에 있는 현재/무심한 고통의 강을 건너 평화를 꿈꾸는 소녀들/그리고 오늘 이 순간, 모두 한 마리 나비가 되어 춤춘다. 꿈꾸는 광복, 마지막 수요일을 향하여!’에 연결되는 이미지들이 포집되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주제에 걸 맞는 춤사위, 짜임새 있는 구성, 시각적 이미지 구성은 차별화된다.

안지형 안무의 『마지막 수요일』
안지형 안무의 『마지막 수요일』
안지형은 쿰무용단의 베테랑이다. 그녀는 『黑-내가 숨쉬는 공기』, 『하늘바라기Ⅰ․Ⅱ』, 『숨(su:m) Ⅰ․Ⅱ』, 『몸, 아라리』, 『연의 노래』 외 심도깊은 작품을 안무해왔고, PAF 신진안무상, 유나이티드 문화재단 무용부분 공로상을 수상하는 등 자신의 안무 영역을 확장해오고 있다. 그녀의 신작 『마지막 수요일』은 역사와 현실에 대한 직시에 있어서 정도(正道)를 보여준다.

등을 보이며 앉은 채 끌려가는 동작으로 시작된 안지형의 춤 표현방식은 정공법을 택함으로써 역사의 진실에 다가간다. 장시간의 리서치, 근거 영상 제시, 분명한 상징들로 춤은 사실감을 확보한다. 안지형은 자신의 문화적 유전자와 안목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고 있다. 그녀의 춤 언어는 광범위한 영역을 커버하고 있고, 작위적 가공(假空)을 차단한다.

안지형 안무의 『마지막 수요일』
안지형 안무의 『마지막 수요일』
『마지막 수요일』은 운명의 수레바퀴가 되어 처절하게 유린당한 인권을 제자리로 돌리는 작업의 일환이다. 상업적 가치를 떠나, 안무가는 열정적으로 자신을 윤전(輪轉)시키는 도구로 작품을 짜고, 진지하게 고민하며 장면을 조합해내며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져가는 수요일의 집회에 중간 불을 놓았다. 역사에 대한 안지형의 진지한 성찰은 자연스레 자신을 격상시킨다.

김수기 안무의 『우리형』
김수기 안무의 『우리형』
김수기 안무의 『우리형』은 독립군이었던 형에 관한 회상을 극무용 형식으로 구성한 작품이다. 작품의 도입부만 보면 영락없는 연극작품이거나 코미디 작품이다. 그는 제목과 달리 무거운 주제를 단순화 시키며 관객과의 소통을 고려한다. 공감 부분을 들추어내고 TV 드라마를 시청하듯 가볍게 춤을 관람할 수 있도록 관객의 눈높이에 춤을 맞춘다.

작품 창작에 있어서 안무가의 입장은 여러 가지다. 관객들이 즐기고, 내용전달이 분명했던 이 작품은 관객과의 소통에 있어서 성공했다. 연기자가 웃을 때 관객도 웃고, 슬퍼할 땐 같이 슬퍼했다. 이 작품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이 어떻게 지켜져 왔으며 독립군들의 애국심과 후손들의 미래를 위해 고군분투한 삶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긴 여운을 남긴다.

김수기 안무의 『우리형』
김수기 안무의 『우리형』
2014 젊은 춤작가전 안무상 수상자 김수기는 독립군의 동생이 세월이 흘러 칠십 세가 되었다는 가정 하에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그 옛날 우리의 형이었고, 누군가의 이웃이었던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 형은 독립군이었다. 낮에는 바보였지만 저녁엔 영웅이 되었지.’ 그들이 그토록 간절하게 바랐던 자유는 지금의 우리에게는 물, 공기, 바람처럼 당연시 되고 있다.

어느 파출소, 서로 시비를 걸었던 사람들이 회상 형식으로 형을 묘사한다. 싸우던 그들은 독립군 애기에 서로 오해를 푼다. 안무가는 안무의 실천법칙을 일정 부분 파괴하고, 한국창작 무용의 현대적 특성을 살린다. 김수기의 춤의 형상은 ‘설명체’이다.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여성 역할을 감행하는 장면에서는 폭소가 터진다.

김수기 안무의 『우리형』
김수기 안무의 『우리형』
높고 낮음이 없이 전개되는 춤과 연희적 행위는 소박하지만 엄숙한 공감을 얻는다. 『우리형』은 드라마 ‘각시탈’의 또 다른 버전이 될 수 있다. 안무가이자 춤꾼인 김수기는 넘치는 연기력으로 할리우드 B급영화가 수용했던 흥행의 미덕을 춤에 도입하고 있다. 춤의 집중에서 오는 긴장감을 열린 영역으로 끌어들이며 자신의 개성을 보여준 자신감을 높이 산다.

박진영(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강사) 안무의 『바람의 기억, 강물에 흐르다』는 광복 당시 45달러에 불과했던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 이르는 시점까지의 ‘한강의 기적’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연대기적으로 전개된 춤은 버라이어티하게 역사의 흔적을 더듬는다. 자신을 희생하며 산업화에 동원된 모든 국민들의 피와 땀의 일터와 인물들이 디테일하게 표현된다.

박진영 안무의 『바람의 기억, 강물에 흐르다』
박진영 안무의 『바람의 기억, 강물에 흐르다』
기적의 주인공들은 ‘할 수 있다’는 희망의 바람을 일게 했던 사람들이다. 안무가는 ‘한강의 기적’의 주인공들과 그들이 거쳐 온 기적의 순간들을 스펙터클하게 춤으로 풀어낸다. 그 시간을 쭉 거쳐 현재의 윤택한 삶을 가능케 한 진정한 역사의 주인공이 누구였는지를 보여준다. 이 작품 속에는 말이 아닌 몸을 던진 사람들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담겨져 있다.

『동상이몽 -이중적 고찰 Ⅰ,Ⅱ』로 안무가로서 가능성을 인정받았던 박진영은 1장 검은 메아리, 2장 새로 이는 바람, 3장 그 바람에 기대어, 4장 한강 아리랑, 5장 물(物)론 등 5장으로 구성된 『바람의 기억, 강물에 흐르다』에서 역사의 굴곡의 순간순간을 사계절에 걸친 물과 바람이라는 소재를 사용하여 희로애락이 담긴 춤으로 이미지화 시킨다.

박진영 안무의 『바람의 기억, 강물에 흐르다』
박진영 안무의 『바람의 기억, 강물에 흐르다』
안무가 박진영은 그 때, 그 시간들, 흐릿해진 기억 언저리의 이미지를 형상화시키고, 한강의 기적, 그 감동의 시절을 거쳐 우리는 현재 어떠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를 연민과 용기를 섞어 보여준다. 안무가 자신도 자랑스러운 그때 그 시절의 모습들을 통해 극기하고, 자랑스러운 주인공의 한 사람으로 거듭나고자하는 의지를 보인다.

『바람의 기억, 강물에 흐르다』는 기록영화나 시대극이 차용하는 연극의 풍경을 세련된 안무로 정형화된 틀을 잘 제시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대작으로의 버전 업이 가능한 작품이지만, 시적 구성의 담백함이 보다 첨가되었으면 ‘한줄기 비’의 청량함으로 부각되었을 것이다. 대작 안무가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박진영의 용기를 찬(讚)한다.

박진영 안무의 『바람의 기억, 강물에 흐르다』
박진영 안무의 『바람의 기억, 강물에 흐르다』
자유소극장 무대에 묵간(墨間)의 의미를 살리며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세 편의 작품들, 안지형 안무의 『마지막 수요일』, 김수기 안무의 『우리형』, 박진영 안무의 『바람의 기억, 강물에 흐르다』는 광복절 70주년을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 시의적절한 주제로 역사의식을 고취시킨 아름다운 작품들이었다. 안무작을 낸 세 무사(舞士)의 건투를 빈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