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이 배출해 내는 사회 불합리·모순 몽타주로 표현

[전혜정의 미술이 있는 삶(53)] 동굴의 경계에서 사유하기/작가 서유정

기사입력 : 2015.08.13 07:53 (최종수정 2017.02.07 00:36)

사실이라고 믿는 이미지 비틀어 새로운 세계 창출

기존의 것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사유하게 만들어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창으로 세계를 보고 있다. 세상을 향해 열린 우리의 창은 우리의 시각이자 시야, 그리고 우리의 세계관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그 창은 세상을 투명하게 비추는가. 우리는 수많은 정보와 이미지에 둘러싸여 있지만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 바르게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쩌면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창이 바르게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나 렌즈가 아니라 우리는 왜곡된 동굴의 세계 속에서 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유정 작 Mirror Mirror, 2015
서유정 작 Mirror Mirror, 2015
플라톤은 『국가』에서 유명한 동굴의 비유로 세상 속의 우리를 설명했다. 일평생을 어두운 동굴 속에서 사지가 묶인 채 살고 있는 죄수들은 이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다. 그들이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동굴 벽에 희미하게 비치는 그림자들뿐이다. 그들에게 그림자는 이 세상이 제공하는 거의 유일한 이미지다. 그리고 그들은 이 세상을 그 그림자로 판단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 중 한 명이 바깥세상으로 나간다. 햇빛에 비치는 바깥세상의 찬란함을 본 그는 동굴에 돌아와서 다른 죄수들에게 바깥세상을 설명한다. 그러나 동굴에 있는 죄수들은 이를 믿지 않는다. 동굴에서 동굴 벽면을 향하도록 쇠사슬에 묶여, 등 뒤에서 빛이 들어와 벽에 투영된 그림자만 평생 봐온 죄수들은 그 그림자가 세상인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즉 실제 모습이 아닌 우상화된 모습이나 비친 모습이 진실이라고 믿는 동굴의 비유에서, 동굴 안은 가시적인 현상의 세계를, 동굴 밖은 지성에 의해 알 수 있는 실재의 세계를 의미한다. 플라톤이 진리라고 설명하는 ‘이데아(Idea)’를 깨닫기 위해서는 (시각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감옥을 떠나 눈부신 빛이 주는 고통을 인내하고, 지성에 의해서만 알 수 있는 영역으로 들어가 아름답고 훌륭하며 선한 이데아를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서유정 작 The secret interview Monday 1 May, 2013
서유정 작 The secret interview Monday 1 May, 2013
서유정 작 Cold in my chairs not enough water inside, 2013
서유정 작 Cold in my chairs not enough water inside, 2013
서유정의 그림은 동굴 벽에 그려진 매혹적인 그림자다. 실제로 우리가 세상을 보고 판단하는 것은 세상 속 진실이라기보다는 미디어에 의해 가공되고 왜곡된 그림자다. 서유정은 그 그림자의 일부를 선택하여 취하고 재구성하여 새로운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그 그림자는 세계를 바로보게 하는 창인 동시에, 세계의 본 모습을 가리고 화려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만화경(kaleidoscope)이기도 하다. 작가는 초기에 추상적인 작업을 하다가 사회적인 메시지에 관심을 갖게 되어 점차 구상적인 비중을 늘려가게 되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에 걸맞은 비판의식을 통찰력 있게 표현하는 것”이 작가의 책임감이라는 서유정은 “시대정신”을 표현하기 위한 조각들을 그러모아 이를 통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든다.

서유정 작 不生不滅 불생불멸, 2015
서유정 작 不生不滅 불생불멸, 2015
서유정의 이미지들은 TV, 잡지, 인터넷 등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친근한 이미지들이다. 그러나 이 이미지는 서로 맥락 없이 중첩되고 연결되고 병치됨으로써 새로운 맥락을 갖는다. 패션지에서 빠져나온 것 같은 매력적인 인물들은 얼굴이나 목이 없거나 표정이 없다. 이 파편화된 신체들에는 그래서 이름이 없다. 오히려 동물들에게서 우리는 우리와 닮은 표정을 볼 수 있으며, 이 신화와 민담에서 온 이 반인반수의 동물들은 사람도 동물도 아닌 모호한 정체성을 내비추고 있다. 서유정의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며, 동물들은 동물이 아니다. 이것은 불안한 존재의 상징이다. 서유정의 화면 안에서 사람들과 동물들은 서로 다른 공간 안에서 아슬아슬하게 중첩되어 있다. 실재와 환영의 세계, 인간과 동물의 세계, 추상과 구상의 세계가 어지럽게 콜라주 되어있는 서유정의 공간은 시간성으로 대변되는 오래된 건축물과 함께 동굴 밖의 세상과 동굴 안의 세상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것은 진실의 세계도, 거짓의 세계도 아닌,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는 그림자와 허상에 던지는 커다란 물음표이다.

서유정 작 Just Another Day, 2015
서유정 작 Just Another Day, 2015
서유정 작 Knock Knock, 2015
서유정 작 Knock Knock, 2015
그 어떤 부가적인 설명도 하지 않고 복잡한 이미지들이 얽혀있는 서유정의 작품 속에서 우리는 충돌하는 공간과 충돌하는 색상들을 본다. 붉은 색과 노란색, 초록색과 오렌지색, 푸른색과 분홍색 등 보색에 가까운 색들의 강렬한 대비는 화면 전체에 팽팽한 긴장감을 부여하며, 복잡한 이미지의 모호함을 강렬함으로 꿰뚫는다. 그러한 극단적 이미지의 병치와 색상의 대조 속에 흰 구멍이 있다. 빈 곳이 있다. 정치적인 내용과 유전공학적인 내용, 생명공학적인 내용 등이 합쳐져 권력과 자본에 대항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서유정의 작품에서 이 빈 곳은 의미전달의 구멍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작가가 주장하는 미디어 비판이나 정치, 경제, 권력 비판, 진보성에 대한 지향은 이 흰 구멍으로는 결코 전달될 수 없는 정확한 의미의 또 다른 동굴을 보여준다. 서유정의 그림은 세련되고 화려함만을 남긴 채 모호성과 간접성 뒤로 본심을 숨기는 것이다.

서유정 작 Boogie Wonderland, 2015
서유정 작 Boogie Wonderland, 2015
서유정 작 The Day You Went Away, 2015
서유정 작 The Day You Went Away, 2015
작가는 “권력과 생산의 탐욕이 배출해 내는 불합리와 모순을 몽타주적 이미지의 추출과 편집을 통해 표현한다. 각 이미지들은 그것들이 유래한 곳을 암시하지만 더 이상 사실적인 정보가 아닌 극적인 허구의 형식을 드러낸다. 무분별 대량생산된 이미지와 정보들을 컴퓨터로 불러내서 특정 연결고리 없는 부조화의 이미지와 불완전한 개념들을 임의적으로 결합시켜 다의적인 해석을 가능케 한다”고 쓰고 있다. 서유정의 몽타주는 가상의 시공간에 매스미디어의 이미지를 컴퓨터로 다층적으로 배치하고 이를 다시 회화로 재현하는 복잡한 방법으로 우리가 사실이라고 보고 있거나 그냥 지나쳐 버리는 이미지들을 뒤틀고 비틀어 새로운 세계를 창출한다. 이 복잡하고 어두운 이야기는 예쁜 이미지와 밝은 색상으로 미적인 쾌감을 선사하는 그림으로 우리 앞에 주어진다. 서로 간에 중첩되는 이 이미지들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무엇이 원래의 이미지고 무엇이 그림자인지, 무엇이 거울의 앞에 있는 것이고 무엇이 거울이 비치는 환영인지 뒤섞어 놓은 채 우리의 해석을 남겨 놓는 빈 공간을 내보이고 있다.

서유정 작 Morning Glory, 2015
서유정 작 Morning Glory, 2015
“사유하는 행위는 단순한 자연적 가능성으로부터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유일하게 진정한 창조 행위이다. 창조는 사유 그 자체 내에서 사유하려는 행위의 발생이다. 이 발생은 사유에 폭력을 행사하여 그것의 자연적 무력함과 추상적인 가능성들로부터 사유를 떼어 내는 무언가를 포함하고 있다.” 들뢰즈(Gill Deleuze)가 설명했듯이 서유정은 이 복잡한 이미지의 병치를 통해 보는 사람의 사유를 이끌어내고 있다. 서유정이 작품으로 이끌어내는 사유는 창조의 사유다. 이는 주어진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용의 태도가 아니라 기존의 것에 의문을 품고 거부하며, 비트는 항거의 사유다. 서유정의 작품은 동굴 안과 바깥세상 사이의 경계에 서서 끊임없이 새로운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동굴 속의 우리 인간들에게 묻는다. 어차피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이 그림자라면, 의심하라고, 다르게 생각하라고, 그리고 깨어있으라고.

서유정 작 Wake up with You, 2015
서유정 작 Wake up with You, 2015
● 작가 서유정은 누구?
서유정은 홍익대학교 판화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프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 회화과 대학원을 졸업한 후 홍익대학교 대학원 회화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7년을 시작으로 13회의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환기미술관, 뉴욕 2x3Galler, 부산비엔날레 특별전 등 70여회의 그룹전 및 국제전에 참여했다. 신 미술대전 대상, 현대 판화가 협회 공모전 우수상, 2004 Manhattan Arts 국제공모전 우수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매체의 확장을 모색하며 지속적인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 필자 전혜정은 누구?
미술비평가, 독립 큐레이터. 예술학과 미술비평을 공부했다. 순수미술은 물론, 사진, 디자인, 만화, 공예 등 시각예술 전반의 다양한 전시와 비평 작업, 강의를 통해 예술의 감상과 소통을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창작자와 감상자, 예술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있다. <아트씨드프로젝트(ART Seed Project): 시각문화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국민대 대학원 등에서 전시기획, 미술의 이해 등을 강의하고 있다.

전혜정 미술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