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정의 미술이 있는 삶(66)] 문학·회화가 어우러진 북아트 예술의 향기를 내뿜다

북아트 작가 강진숙…책, 상자 밖을 나와 이야기를 들려주다

기사입력 : 2016.02.18 07:45 (최종수정 2017.02.07 00:40)

텍스트와 이미지가 조화되고 책처럼 닫혔다 열리는 세계

씨앗에 갇혔던 존재가 열리고 나무가 되고 잎사귀 펼치 듯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 들려줘

강진숙 작 마음 속의 정글, 팝업북, 종이, 펜, 17x14cm, 2007
강진숙 작 마음 속의 정글, 팝업북, 종이, 펜, 17x14cm, 2007
강진숙 작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이문세 노랫말, 종이에 페이퍼커팅, 12.3x13.3cm, 2007
강진숙 작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이문세 노랫말, 종이에 페이퍼커팅, 12.3x13.3cm, 2007
우리가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선생님은 엄마이고 처음 접하는 교재는 책이다. 그림책을 통해 아기는 처음으로 회화를 접하고, 엄마가 책 속 글을 읽어줌으로써 처음으로 문학을 접한다. 그 이후 우리가 배우는 대부분의 간접 경험은 책을 통해 이루어진다. 회화와 문학이 접목된 책에서 학창시절에 대학에 가기 위해 무작정 덤벼들었던 수많은 수험서, 사전들, 성인이 된 후 접하는 실용서와 자기계발서, 관심분야의 잡지들, 그리고 소설, 수필 등의 문학서적들, e-Book까지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읽은 책이 모두 몇 권인지, 그리고 그 내용은 무엇인지 기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의 현재를 이루고 있는 많은 부분은 우리가 읽은 책의 영향이라는 것을. 눈물 흘리며 감동받았던 이야기들, 자신의 길 앞에 등불이 되어주었던 인생의 지침서들, 그리고 지식에 갈급했을 때 읽었던 여러 이론서들이 나의 뇌, 나의 심장, 나의 혈관 어딘가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음은 분명하다.

강진숙 작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 석판화, 활자, 16x20.5cm, 2004
강진숙 작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 석판화, 활자, 16x20.5cm, 2004
‘북아트’라는 장르는 우리의 일상에 가장 가까운 ‘책’이라는 존재가 ‘예술’의 시각에서 재탄생한 것이다. 강진숙의 북아트 작품은 그림과 글이 만나는 책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요소에서 예술의 존재의의와 가치를 끌어내고 있다. 북아트가 처음 우리나라에 소개되었을 때 내 손으로 직접 꿰매어 예쁜 책 제본(Binding)을 만든다는 생각에 비교적 빠른 기간에 대중적 관심과 인기를 얻었지만, 공예품 같은 표지디자인들이 많아지고 내용은 비어있는, 주로 형식 및 장식, 모양만 치중한 ‘반쪽짜리 책’들이 상당수였다는 강진숙은 북아트라는 다소 생소한 장르를 소개한 세대로 책을 통한 예술 활동과 이를 알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서양화에서 시작했으나 화가로서의 본인의 작업에 한계를 느끼면서 성실한 작업 방식과 다수의 작품 제작이 가능한 판화에 매력을 느껴 스페인과 독일에서 판화를 공부하게 된 작가는 독일에서 북아트를 접하면서 북아티스트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유학시절 건강악화와 출산 등의 공백으로 작가로서의 공백기가 생겼을 때 스스로 갇혀있는 상자라고 느꼈다는 작가는 뚜껑을 열어야 그 본 모습과 그 안의 내용물을 볼 수 있는 상자처럼 책도 표지를 들추어야 읽을 수 있는 공통점이 있기에 어쩌면 자연스럽고 운명적으로 북아트를 만나게 된다. 또한 독일 카톤(Karton) 박스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평평하고 투박한 종이가 접혀져 공간감이 있는 상자가 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조형적 가능성을 보고 ‘어느 상자 이야기’를 통해 상자이며 책인 작품을 선보인다.

강진숙 작 어느 상자 이야기, 석판화, 활자 인쇄, 19x19cm, 1996-7
강진숙 작 어느 상자 이야기, 석판화, 활자 인쇄, 19x19cm, 1996-7
강진숙 작 어느 상자 이야기, 석판화, 활자 인쇄, 19x19cm, 1996-7
강진숙 작 어느 상자 이야기, 석판화, 활자 인쇄, 19x19cm, 1996-7
“어느 곳에 한 상자가 있었다. 상자는 늘 그대로 그곳에 있었다. 그것이 왜, 거기에 그렇게 놓여져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상자를 건드렸다. 무엇인가 가득 들어있으리라는 기대와 확신으로 상자를 열어보았다. 상자는 완전히 비어 있었다. 그 누군가는 실망하여 상자를 떠나갔다. 상자는 이제 다시 제 몸을 닫고 가만히 점점 더 그의 전부로 살아 있으려 애썼다. 다시 한 번 그 누군가가 그를 발견하고 이번에는 별 기대없이 열어보니 그 상자 속에서는 무수한 낙엽을 뚫고 작은 나무 한 그루가 솟아나 있었다.”

제 속을 열어 한 면씩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느 상자 이야기’는 각각 독일어와 한국어로 누군가 자신을 열어주길 바라는 수동적인 닫힌 상자가 삶에 대한 끝없는 의지와 희망으로 결국 상자 밖을 뚫고 하늘로 자라오를 수 있는 나무가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 본인이 작성한 이야기와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전혜린 등 문인들의 글을 주제로 하고 그림 뿐 아니라 텍스트 자체가 내용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타이포그래피(typography)를 연구하며 북아트 작품을 펴내고 있는 강진숙은 찬합 도시락 및 조각보 같은 독특한 접기 방식을 통해 상자를 닮은 책을 만들어냈다. 상자가 열어져 제 속을 보여 닫힌 것을 열고 상자 그 자신이 아닌 내용물이 주목을 받게 하는 것처럼 강진숙의 북아트 작품은 오랜 시간 동안 씨앗에 갇혀 있었던 존재가 그 속을 열고 껍데기를 뚫고 나와 싹을 틔워 나무가 되어 잎사귀를 펼치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듯 그렇게 서서히 이야기를 들려준다. 화려하게 만개하는 꽃보다 풀과 나무를 더 사랑한다는 작가는 ‘작은 나무이야기’, ‘두 나무 이야기’, ‘마음 속의 정글’, ‘새를 사랑한 산’ 등 자연을 닮은 작품을 만들어내었다.

강진숙 작 작은 나무 이야기, 세리그래피 인쇄, 21.5x28.5cm, 1998-99
강진숙 작 작은 나무 이야기, 세리그래피 인쇄, 21.5x28.5cm, 1998-99
강진숙 작 작은 나무 이야기, 세리그래피 인쇄, 21.5x28.5cm, 1998-99
강진숙 작 작은 나무 이야기, 세리그래피 인쇄, 21.5x28.5cm, 1998-99
강진숙 작 작은 나무 이야기, 세리그래피 인쇄, 21.5x28.5cm, 1998-99
강진숙 작 작은 나무 이야기, 세리그래피 인쇄, 21.5x28.5cm, 1998-99
예술(art)이라는 용어의 어원인 라틴어 ars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그리스어인 테크네(τ??υ?, techne)는 일정한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는 ‘기술’을 총칭하는 말로, 18세기 독일의 철학자 바움가르텐(Alexander Gottlieb Baumgarten)이 ‘미학(Asthetik, Aesthetics)’을 규정하기 전까지는 ‘예술’과 ‘기술’의 개념이 분리되지 않고 함께 쓰였다고 알려져 있다. ‘북 아트(book art)’는 ‘책’이라는 인쇄매체 시대의 지식 집약적인 산물을 ‘예술’이라는 가장 창조적이고 미적인 장르와 결합시킴으로써 어떻게 보면 ‘기술’과 분리되기 이전의 ‘예술’의 원형을 찾는 작업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북아트의 본질은 작가들이 그림으로, 조각으로 작품을 표현하듯이 책의 형태로 작품을 표현하는 것으로 이미지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와 이미지가 조화되고 책처럼 닫혔다가 열리는 새로운 세계”라는 강진숙의 설명처럼 ‘서적예술’로서의 북아트는 이제 그 낱장 낱장에 예술을 새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강진숙 작 마음 속의 정글, 리놀륨 판화, 석판화, 종이, 보드, 26.5x17cm, 2006
강진숙 작 마음 속의 정글, 리놀륨 판화, 석판화, 종이, 보드, 26.5x17cm, 2006
강진숙 작 가슴을 열어 보이는 나무, 판화지, 한지, 지관, 11x36cm, 2007
강진숙 작 가슴을 열어 보이는 나무, 판화지, 한지, 지관, 11x36cm, 2007
강진숙 작 산, 31x25.5cm, 2005
강진숙 작 산, 31x25.5cm, 2005


“늘 상자에 담듯 상자에서 끄집어내듯 작업하는 버릇이 길러졌고 차곡차곡 상자 속에 쌓이는 이야기로 책도 만들게 되었다. 빈 상자가 소망을 실어 작은 새싹을 품었고 그 싹은 자라 나무가 되었다. 그리고 상자는 떠나갔지만 어쩌면 상자가 있었기에 그 나무도 있었을 것이다. 자연을 닮은 작품을 만들어내길 소망한다. 그리고 가두는 존재로서의 상자가 아니라 보듬어주는 둥지 같은 상자 속에서 푸른 이야기들을 많이, 많이 품어내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푸른 상자 이야기로 풀어내고 싶다.”

작가가 2010년 펴낸 책 ‘나무가 되고 싶은 책, 책이 되고 싶은 나무’에서 밝히고 있듯 강진숙의 상자에서는 나무가 자라 상자 밖을 나와 하늘을 조우하고, 책에서 예술이 자라나 우리의 마음 속에 꽃을 피운다. ‘보는’ 예술에서 ‘보고 읽는’ 예술, 문학과 회화의 조우인 북아트는 그래서 강진숙 평생의 동반자이다. 우리에겐 지극히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래서 푸른 숲 속에 다른 나무들과 같이 서 있으면서도 그 잎 올올이 가슴으로 쏟아내는 이야기를 담고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아름답고 독특한 한 그루의 나무이다.

강진숙 작 아기 칡과 오리나무 할머니, 한지 장지, 종이, 나무, 지끈, 리본, 17x33cm, 2009
강진숙 작 아기 칡과 오리나무 할머니, 한지 장지, 종이, 나무, 지끈, 리본, 17x33cm, 2009
강진숙 작 낙화, 이형기 시, 지관, 종이, 12x33.5cm, 2008
강진숙 작 낙화, 이형기 시, 지관, 종이, 12x33.5cm, 2008


● 작가 강진숙은 누구?
서양화를 전공한 후 국립 바르셀로나 미술대학(스페인)에서 석판화를 전공한 후 독일 브라운슈바익 조형예술대학에서 판화를 공부하고 아티스트북 작업으로 마이스터슐러 학위를 취득했다. 독일에서 개인전 및 국제 북아트페어를 통해 북아티스트로 활발히 활동하였고, 귀국 후 꾸준히 작품 제작을 하고 있으며, 북아트 교육을 병행하고 있다. 10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현재 한국북아트협회의 회장으로 북아티스트로서의 작업과 함께 북아트를 국내외에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 필자 전혜정은 누구?
미술비평가, 독립 큐레이터. 예술학과 미술비평을 공부했다. 순수미술은 물론, 사진, 디자인, 만화, 공예 등 시각예술 전반의 다양한 전시와 비평 작업, 강의를 통해 예술의 감상과 소통을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창작자와 감상자, 예술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있다. <아트씨드프로젝트(ART Seed Project): 시각문화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국민대 대학원 등에서 전시기획, 미술의 이해 등을 강의하고 있다.

전혜정 미술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