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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현대미술(2)] 짐승처럼 꿈틀대는 강렬한 색채의 숨소리 들어보자

기사입력 : 2016-03-16 16:34

20세기 최초 새 유파로 탄생…격렬하고 빠른 붓놀림과 충격적일 정도의 색감이 특징

자연색보다 예술가 느낌대로 마티스·뭉크 일반인에도 친숙…객관적 묘사 넘어 심리 강조

‘응답하라, 현대미술!’ 우리는 이 시리즈를 통하여 때로는 당혹스럽고 때로는 너무 어려워 접근하기 힘든 ‘현대미술’과 소통하고 상호작용 하고자 합니다. 현대는 언제일까요? 여러분들이 지금 이 글을 읽는 이 순간도 현대이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내일도 현대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2016년을 기준으로 해서 21세기를 ‘현대’라고 보면 될까요? 하지만 20세기에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20년도 안된 21세기만 ‘현대’로 생각하고 그 이전의 모든 산물들을 ‘과거’의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것은 너무 억울한 일입니다. 예상하셨겠지만 우리의 현대미술은 ‘20세기 이후’의 미술을 뜻하고 있습니다. 현대성이란 것이 18세기 후반 프랑스 혁명과 산업혁명으로 싹터 19세기에 과학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뿌리를 내리고, 20세기에 그 영향력을 열매 맺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세기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이전 세대와 확연히 달랐던 시기였습니다. 20세기 초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정신분석학’으로 기존에 알지 못했던 무의식이라는 세계를 알렸고,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상대성이론’으로 시간, 공간, 물질에 대한 기존의 사고를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또한 1, 2차 세계대전은 인류에게 크나큰 상처를 안겨주어 철학과 사상을 송두리째 뒤흔들던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에는 수많은 예술적 표현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여, 미술사가 잰슨(H. W. Janson)은 이미 1971년에 “20세기 현대미술에서 범람하고 있는 수많은 이즘(ism)을 모두 헤아리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현대미술의 모든 모습들을 살펴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의미 있는 몇몇 사조들을 불러내어 이들의 응답을 들어보고자 합니다.

20세기 최초의 새로운 유파와 사조 중 하나는 그 이름부터 짐승스러운 ‘야수파(Fauvism, 포비즘)’입니다. 19세기 후반 자연 속에의 빛을 시각적으로 포착하고 이를 화면에 담아내려했던 인상주의(Impressionism)와 이후 반 고흐(Vincent van Gogh)와 고갱(Paul Gauguin)의 강렬한 개성과 표현, 세잔(Paul Cezanne)의 새로운 조형적 연구 등을 경험했던 예술가들은 세기가 바뀔 무렵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다양한 조형적 실험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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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드랭 작 런던의 체링 크로스 브리지(Charing Cross Bridge, London),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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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맹크 작 샤뚜의 바지선(Barges in Chatou), 1905
이 시기 격렬하고도 빠른 붓놀림과 그 이전에는 사용되지 않았던 충격적일 정도의 색감을 가진 그림들이 등장했습니다. 격렬한 색채의 그림들을 그리던 화가들은 반 고흐와 고갱이 그랬듯이 당시 서구에 유입되었던 일본 미술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치밀하고 섬세한 묘사가 아닌 강렬한 색채의 면들이 서로 조화되도록 했습니다. ‘야수파’라는 명칭은 1905년 한 평론가가 전시장에서 몇몇 젊은 화가들의 작품들을 보고 “야수들(des fauves)!”이라고 소리를 지른 것에서 비롯됩니다. ‘포브(fauve)’란 프랑스어로 ‘야수’ 또는 ‘야만인’이라는 의미인데, 자연적인 형태와 색채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감정에 따라 격렬한 색채를 사용한 작품들이 고전적인 아름다움에 익숙해있던 당시 사람들의 눈에 ‘야수’처럼 보였던 것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충격적인 등장으로 비난적 시선을 받았던 이 작품들은 이후 “‘야만적’인 조화를 추구”(E. H. 곰브리치, 1950)하였다고 평가받고 있고, 이제는 ‘야수파’란 표현이 더 이상 부정적인 이름표가 아니라 ‘야만적일만큼 충동적이며 강렬한 색채의 조화’를 드러내는 20세기 초의 미술 표현양식들을 일컫는데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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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 작 모자를 쓴 여성(Femme au chapeau),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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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 작 후식: 레드의 조화(붉은 방)(The dessert: harmony in red (The red room)), 1908
‘야수파’의 화가들 중에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이는 마티스(Henri Matisse)입니다. 드랭(Andre Derain), 블라맹크(Maurice de Vlaminck) 등 동시대 다른 야수파 화가들의 작품이 정말 야만적이고 표현적인 포효하는 물감들의 짐승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면, 마티스의 회화작품들에서 보이는 과감한 원색들은 비교적 얌전한 동물들 같습니다. 하지만 마티스의 회화 작품들에게서 보이는 원색들과 장식성은 얌전한 애완동물 같은 이 작품들도 사실은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이 있는 색채의 ‘짐승’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마티스 작품의 색채와 장식성은 이후 현대디자인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야수파에서 가장 중요한 표현요소는 ‘색’입니다. 드랭과 블라맹크의 풍경이나 건축물, 마티스의 인물에서의 색은 우리가 실제 보고 느끼는 색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눈에 보이는 하늘빛, 푸른 강, 밝은 피부색이 아니라 예술가 자신이 느끼고 표현하고 싶은 대로 화면에 칠해진 색들은 ‘야수’라는 말처럼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꿈틀대듯 우리 눈에 다가옵니다. 이런 강렬한 표현들의 작품들을 예술사조에서는 ‘표현주의(Expressionism)’라는 용어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표현주의는 미술뿐 아니라 음악, 문학, 영화 등을 포함하여 객관적인 묘사를 넘어서서 인간의 심리적인 내면과 감정을 강조하여 표현하는 20세기 초반의 예술 형태들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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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작 절규(Skrik), 1893
내면의 심리상태를 극적으로 표현한 작품들 중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우리의 눈과 마음을 찌르고, 소리 없는 날카로움으로 우리의 귀를 찢을 듯한 뭉크(Edvard Munch)의 ‘절규’입니다. 20세기를 앞두고 그려진 이 그림은 이후 그 충격적인 표현으로 많은 이들에게 소리 없는 절규를 들려주었고, 영화 ‘스크림(Scream)’(1996)의 가면모습을 비롯하여 디자인, 만화 등에서 수많은 패러디를 만들어내는 등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절규의 메아리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야수파와 교류하며 동시대에 활동하면서도 독자적인 표현주의를 구축한 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는 중세 종교화의 정신을 이어받아 기독교적 주제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타락한 세계의 모습과 거리를 둔 반 고흐와 고갱의 정신성과 색채 표현에 영향을 받은 그의 작품들은 타락한 세상에 대한 절망과 고뇌, 그리고 희생과 구원이라는 기독교적 주제를 어둡고도 강렬한 색채와 더불어 거친 붓자국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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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오 작 그리스도의 얼굴(Head of Christ or Christ Mocked), 1905
짐승처럼 꿈틀대는 야수파의 색채, 그리고 붓자국과 선으로 울부짓는 표현주의의 형태들. 이 이미지들이 단지 캔버스나 종이 표면에 물감들로 덧입히고 그린 2차원의 그림에 지나지 않을까요? 한 세기 전에 그려진 이 그림들은 실제로 움직이지도 않고 어떠한 소리도 없지만 우리가 이들과 상호작용하면 색채들은 야수처럼 우리의 눈에 달려들고, 거친 형태들은 짐승같이 꿈틀대며 거친 숨소리를 들려줄 것입니다.

자, 이제 눈으로 움직임을 느끼고 소리를 들어봅시다. 이 거친 색채의 야수들이, 형태의 짐승들이 표현하는 모습을요.

● 필자 전혜정은 누구?

미술비평가, 독립 큐레이터. 예술학과 미술비평을 공부했다. 순수미술은 물론, 사진, 디자인, 만화, 공예 등 시각예술 전반의 다양한 전시와 비평 작업, 강의를 통해 예술의 감상과 소통을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창작자와 감상자, 예술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있다. <아트씨드프로젝트(ART Seed Project): 시각문화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국민대 대학원 등에서 전시기획, 미술의 이해 등을 강의하고 있다.
전혜정 미술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