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파, 자연이 가지는 형태의 영원하고 절대적인 본질 추구

[응답하라 현대미술(3)] 분해되고 재조합된 퍼즐 같은 입체 세상 '입체파'

기사입력 : 2016.03.31 07:04 (최종수정 2017.02.07 00:41)

색채가 꿈틀대는 야수파보다
좀 더 이지적으로 조형성 탐구
자연물도 도형적 요소로 환원

아프리카 가면 조각 영향 받은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충격
아름다움 개념 해체 후 재조합


피카소 작 세 명의 악사(Three Musicians), 1921
피카소 작 세 명의 악사(Three Musicians), 1921
20세기가 시작하면서 여러 미술사조들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파리를 중심으로 봇물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색채가 꿈틀대는 강한 표현의 야수파와 좀 더 이지적으로 조형성을 탐구하는 입체파가 20세기 최초의 유파들이라 할 수 있지요. 그 이름도 입체적인 ‘입체파’는 사실 그 이름 때문에 왠지 ‘육체파’스런 강렬함이 느껴지지만 여기에서의 입체는 정육면체(cube)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입체파’는 ‘큐비즘’이라고도 불리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는 온통 큐브 투성이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빈센조 나탈리(Vincenzo Natali) 감독의 영화 ‘큐브(Cube)’(1997)에서처럼 죽을 운명을 향해 돌아가는 거대한 큐브라는 세상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건축물들이나 사람이 만든 인공적인 구조물이나 상품이 아닌 자연물들은 어떨까요? 유기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는 자연물들도 모두 도형적인 요소로 환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브라크 작 에스타크의 집 1908

입체파는 논리적이고 구조적인 방식 형태를 등장시킨 양식입니다. 이들은 선배 격인 세잔(Paul Cezanne)이 전통적인 원근법의 엄격함에서 벗어나 인간을 포함한 대상이 가진 형태의 본질에 접근하려했던 방식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간 것입니다. 이미 세잔은 19세기 말에 자연의 모든 대상이 원뿔, 원통, 구라는 기하학적 입방체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계속 캔버스에 실험했습니다. ‘입체파’라는 명칭은 1908년 ‘살롱 도톤느(Salon d'Automne)’에서 심사위원이었던 마티스(Henri Matisse)가 브라크(Georges Braque)의 풍경화 ‘에스타크의 집(Viaduct At L’Estaque)’을 보고 ‘입방체(cubic)’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20세기 가장 유명했던 천재화가 피카소(Pablo Picasso)가 바로 이 입체파의 대표적인 화가입니다.

피카소 작 칸바일러의 초상 Portrait of D. H. Kahnweiler, 1909
피카소 작 칸바일러의 초상 Portrait of D. H. Kahnweiler, 1909
류보프 포포바(Lyubov Popova) 작 두 인물들 Two Figures, 1913
류보프 포포바(Lyubov Popova) 작 두 인물들 Two Figures, 1913
그러나 피카소가 아무리 천재였어도 한 시대의 양식을 이끈 건 그의 동료 화가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피카소와 더불어 입체파를 창시한 브라크는 자연을 다시 캔버스에 되살리기 보다는 자연의 본질적인 속성과 법칙을 파악해 회화의 조형적 질서를 구축하려 했고, 그림이 회화로서의 특징과 힘을 가지려면 사물과 배경이 화면 위에서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따라서 보여지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파악하여 일종의 영원하고 절대적이고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려고 했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그림은 보이는 대로가 아닌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즉 가장 완벽한 원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던 고대 이집트의 회화와도 비슷합니다. 입체파 화가들도 사물이 하나의 형태를 가진 것이 아니라 시점에 따라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파악하였고, 다시점(multi-view)에 의해 해체된 대상들을 다시 구성하였습니다. 이는 앞서 설명한 세잔 등의 조형적 연구가 결실을 맺은 것과 동시에 당시 파리의 화가들에게 큰 충격을 준 아프리카 조각상의 영향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야수파의 대표 화가인 블라맹크(Maurice de Vlaminck)가 아프리카 조각을 보여주자 피카소가 “나는 이 조각이 ‘밀로의 비너스’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네”라고 이야기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피카소 작 아비뇽의 처녀들, 1907
피카소 작 아비뇽의 처녀들, 1907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을 보면 아프리카 가면 조각의 영향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이전까지 남성중심의 관음증적 시선에 놓였던 여성의 누드는 이제 ‘보여지는 자’가 아니라 ‘보는 자’로 등장합니다. 남성의 시선에 자신의 맨 몸을 내맡겼던 여성들은 여기에서 당당히 자신을 내보이며 화면 밖 남성의 시선을 되쏘아 봅니다. ‘몸을 파는 직업’인 이 여성들은 화면 속 우리를 무표정한 모습으로 쳐다보며 각진 본인의 맨 몸을 거리낌 없이 내보입니다. 오른쪽의 두 얼굴은 피카소가 ‘밀로의 비너스’보다도 훨씬 더 아름답다던 아프리카 조각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이상적이고도 평온한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듯한 이 여성들의 도발적인 모습이 당시에 어떠한 충격을 주었을까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피카소가 추구한 아름다움은 무엇이었을까요? 미술학교에서 ‘더 이상 배울게 없어서’ 방황했던 천재 피카소는 우리가 아름다움이라고 믿고 있었던 그 개념들을 퍼즐처럼 해체하고 재조합해 형상의 본질을 찾고 싶어했던 것 같습니다.

브라크 작 바이올린과 파이프(일상) Violin and Pipe(Le Quotidien), 1913
브라크 작 바이올린과 파이프(일상) Violin and Pipe(Le Quotidien), 1913
종이상자의 부분들을 아귀가 잘 안 맞는 채로 붙여 놓은 것 같은 입체파의 회화들은 야수파의 화려한 색과는 달리 종이상자의 색이나 금속물질의 색처럼 구리색, 은색, 납색 등 어찌보면 단순한 색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이는 이미지와 보이지 않는 개념을 조형적으로 완벽하게 표현하려는 이러한 노력 때문에 2차원의 평면들은 올록볼록 입체감을 갖고 튀어나오는 듯 보입니다. 금속 조각이 만져질 듯한 이러한 ‘시각적 촉각성’은 이후 점점 두드러져 이제는 평면에 입체적인 물건들을 붙여 조각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입체파가 많이 사용한 기법 중 하나인 ‘콜라주(collage)’는 종이조각이나 작은 물체를 붙이는 기법입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많이 하는 미술 활동 중의 하나이지요. 콜라주의 일종인 ‘파피에 콜레(papier colle)’는 ‘종이를 풀로 붙이다’는 뜻으로 신문, 잡지, 광고지, 악보 등 여러 종이 등을 붙이는 기법을 말합니다. 이 방식을 처음 미술에 도입한 사람은 피카소와 브라크입니다. 브라크는 “파피에 콜레와 그림으로 물체와 물체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되찾으려 했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피카소 작 콜라주로 만든 의자가 있는 정물 Still Life With Chair Caning Collage, 1912
피카소 작 콜라주로 만든 의자가 있는 정물 Still Life With Chair Caning Collage, 1912
피카소와 브라크의 입체파 작품들은 누가 누구의 것인지 분간하기 힘들만큼 닮아 있습니다. 활동하던 시기도 장소도 같았던 두 사람은 실제로도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단, 브라크는 계속 입체파에 몰두한 반면 피카소는 다양한 조형적 실험을 했으며, 피카소가 훨씬 더 유명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카소라는 이름만을 기억하고 있을 뿐입니다. 피카소와 브라크는 형태를 해체시켜 화면이라는 공간에 배치하지만, 사실 이들은 대상의 해체보다는 화면을 어떻게 구성하고 어떻게 질서 혹은 무질서를 구현할 것인가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물론 다소 딱딱해 보이는 이들의 그림이 분석적이고 이성적인 방식을 채택했다고 하더라도 이 후 피카소의 그림은 전쟁의 잔혹성과 그로 인한 인간성의 말살, 그리고 인간의 비극을 표현하여 사실적이고 재현적인 작품들과는 또 다른 마음의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피카소 작 게르니카 Guernica, 1937
피카소 작 게르니카 Guernica, 1937
과학자나 수학자들은 증명 가능한 법칙 속에서 본질적인 것을 찾지요. 그러나 예술가들은 감수성 안에서 본질적인 것을 찾지 않을까요? 도형들을 잘라 붙인 것 같은 입체파의 그림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눈이 들고 나며 2차원 평면으로서의 공간, 3차원 입체로서의 공간을 함께 봅니다. 그리고 그 안에 조형적 요소로 표현된 영원하고도 절대적인 감수성의 본질을 구현하려는 예술가들의 노력이 퍼즐처럼 숨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대중가요 가사처럼 ‘피카소의 그림 같은 (알 수 없는) 얼굴’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을 누구보다 예민한 눈으로 포착한 ‘피카소의 상자 같은 세상’을 우리도 꿰뚫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피카소 작 우는 여인(Weeping Woman), 1937
피카소 작 우는 여인(Weeping Woman), 1937

● 필자 전혜정은 누구?
미술비평가, 독립 큐레이터. 예술학과 미술비평을 공부했다. 순수미술은 물론, 사진, 디자인, 만화, 공예 등 시각예술 전반의 다양한 전시와 비평 작업, 강의를 통해 예술의 감상과 소통을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창작자와 감상자, 예술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있다. <아트씨드프로젝트(ART Seed Project): 시각문화연구소>를 운영하며, 대학에서 전시기획, 미술의 이해 등을 강의하고 있다. 현재 국민대 대학원 전시디자인과 겸임교수로 활동 중이다.

전혜정 미술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