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통찰은 지식•충고보다 자신이 깨달아야 얻는다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88회)] 충고와 비난보다 통찰을

기사입력 : 2016.05.18 09:34 (최종수정 2017.02.07 00:42)

비난이나 처벌에 대한 두려움
버려야 자신 실체 볼 수 있어

사는 것이 뜻대로 안 되는 것은
느끼지 못하는 내면 감정 때문

서민들의 꿈은 소박하다. 시대를 호령하는 정치인이 되겠다는 것도 아니고, 천하에 제일가는 부자가 되겠다는 것도 물론 아니다. 남들은 꿈도 못 꿀 위대한 발명을 해서 노벨상을 타겠다는 것도 아니다. 비록 누추하지만 자기 집에서 가족들과 하루 세끼 굶지 않고 알콩달콩 지내고 이웃들과 오순도순 살아가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가 않다. 어렸을 때부터 눈만 뜨면 가정과 학교에서 수없이 다른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라난다. 밖은 비록 냉혹한 생존경쟁과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전쟁터이지만 일단 가정으로 돌아오면 마음 놓고 쉴 수 있고 모든 잘못이 용서받을 수 있는 천국이라고 배우는데 사실은 우리를 제일 힘들게 하는 것이 가족이라는 것이 큰 역설이다. 중년에 다다른 남매가 어버이날에 칠순의 아버지를 살해하는 현실에서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즐겁고 보람 있게 사는 것이 ‘배움’에 달려있는 지식의 문제라면 오히려 쉽다. 열심히 공부하고 배우면 다 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사는 것이 뜻대로 안 되고 힘든 이유는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신도 알지 못하는 감정’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내가 나를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자신을 다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시시각각 느끼는 감정을 다 인식하지 못한다. 특히 양심에 거리끼는 감정을 느끼면 양심의 가책을 피하기 위해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마음 속 깊은 곳에 묻어버리고 없는 것처럼 느끼면서 살아간다.

동시에 양심에 저촉되는 행동을 했을 경우에는 실제 원인을 인식하고 자책하기 보다는 다른 곳으로 원인을 돌리고 정당화하며 살아간다. 이것은 우리 스스로를 지키려는 한 방편이기도 하다. 하지만 감정은 없는 척 한다고, 또는 의식하지 못한다고 실제로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감정은 항상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 옆 사람이 나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는 이유이다.

상담실에 한 어머니가 10살 난 아들과 함께 찾아왔다. 이 어머니가 상담실을 찾은 이유는 아들이 너무 말썽을 피워 더 이상 참고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한참동안 아들의 흉을 본 어머니는 아들이 너무 버릇없이 이렇게 말썽을 피우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버릇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상담을 하면서 이 어머니는 그동안 아들에게 느꼈던 울분과 미움, 안타까움과 좌절감 등을 아무 제한 없이 마음껏 쏟아내었다. 몇 차례 방문을 통해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마음껏 토로한 후 어머니는 놀라운 사실을 스스로 깨달았다. 아들이 말썽을 피우는 진짜 이유가 버릇이 나빠서가 아니라 어머니인 자신의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해 그러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아들에게 뿐만 아니라 남편이나 부모에게도 실상 그렇게 다정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지금까지 부부관계가 만족스럽지 않은 이유도 남편보다는 자신이 냉정하고 쉽게 가족들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한 것에 원인이 있다는 사실을 덩달아 깨달았다. 물론 이 어머니는 아들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남편과의 관계까지 좋아졌다.

만약 자신이 냉정하고 사랑을 충분히 주지 않아서 아들이 말썽을 부린다는 것을 이 어머니에게 알려주었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 어머니는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을 알려주어 고마워하면서 아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다정스런 어머니로 변했을까? 물론 답은 ‘아니오’이다. 아마도 십중팔구 이 어머니는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 상대에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느냐? 세상에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에미가 어디 있느냐?”고 화를 낼 것이다.

이 어머니는 ‘나쁜’ 어머니가 아니다. 다만 자신이 자녀를 충분히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의식적으로는 자신도 다른 어머니들처럼 자식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식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말썽을 피우는 아들의 장래를 염려해서 버릇을 고쳐주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어머니에게 “당신이 충분히 사랑을 주지 못해서 아들이 말썽 부린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변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런 사실을 알려준 사람과 관계가 서먹해질 뿐이다. 비록 그것이 사실이지만 말이다.

그럼 이 어머니는 왜 자신이 자녀를 충분히 사랑하지 못하는 냉담한 어머니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자신의 양심에 거리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각각의 어머니 실제 성품과 관계없이 ‘모든 어머니는 자녀를 사랑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믿음을 객관적인 검증을 하지 않은 채 통설(通說)로 퍼트리고 교육한다. 이 통설은 ‘모든 어머니는 자녀를 사랑해야 한다’는 당위(當爲)가 된다. 그리고 모든 어머니들은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자신도 자녀를 사랑하고 있다고 믿게 된다. 그리고 주위에 자녀를 사랑하지 않거나 미워하는 어머니가 있다면 마치 자신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비난하고 처벌한다.

이런 현실에서 자신이 사랑이 부족한 어머니라고 깨닫고 인정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비난을 받는 것은 차치(且置)하고라도 자신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만약 이 사실을 깨닫게 되면 양심의 가책을 받고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죄책감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는 여러 다른 이유로 죄책감을 느껴본 사람은 다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죄책감에 시달리기보다는 차라리 그 사실을 인식하지 않고 다른 것에 원인을 돌리는 쪽을 택한다.

상담실에 온 이 어머니도 자신의 성품이 문제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 채 자녀가 버릇이 없기 때문에 말썽을 부린다는 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버릇을 고치기 위해 꾸짖고 처벌하는 방식을 취하면 취할수록 아들은 더 말썽을 부리는 악순환에 빠져 있었다. 왜냐하면 그럴수록 아들은 어머니의 관심을 얻기 위해 더 말썽을 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어머니가 자신이 아들이 원하는 만큼 사랑을 베풀지 못했다는 가슴 아픈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아들이 말썽을 피운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정해야 한다.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던 사실을 깨닫는 것을 ‘통찰(洞察)’이라고 한다. 통찰은 지식이나 충고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깨달아야하는 것이다.

통찰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이 느끼는 것을 비난이나 처벌을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모두 속 시원히 털어놓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충고와 처벌은 기대하는 만큼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통찰을 얻는 데 방해가 된다. 바로 그 비난과 처벌을 받을 두려움 때문에 자신도 그렇다고 통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가정이 희망인 것은 비난과 처벌이 제일 적은 곳이기 때문이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 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 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