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장은의 재즈다이어리(3)] 재즈의 묘미는 아슬 아슬함과 예측 불허!

기사입력 : 2017.02.02 06:00 (최종수정 2017.02.02 06:00)
 
 
갓 스물 세 살이 되던 해 1월의 차가운 날, 나는 떠났다. 큰 가방 두 개를 들고 기내에도 한 개 들고 탔다. 어머니가 정성껏 얼려서 싸주신 한달치 보약을 들고... 그것이 녹으면서 터지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오우 마이 갓!! 김치도 싸주신 것이다. 보약 옆에 둔 김치도 터진 모양이다. 승객들은 고맙게도 아무런 불평을 안했다. 그러나 나는 너무 당황하여 계속 화장실로 도망다녔다. 지금 생각해 보니 너무 죄송스럽다. 당시에 비염을 앓고 있어서 냄새를 잘 맡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처음 가는 지역에 아는 사람도 없고 학교 근처 호텔 주소만 달랑 가지고 어떻게 하면 이 짐들을 무사히 들고 도착하는냐, 도대체 그 땅에 떨어져서 나는 어떻게 될것인가가 너무 너무 걱정되었다.

옆에 앉아계시던 아주 친절한 동포 아주머니의 손을 붙잡고 내가 뭐가 아쉬워서 이렇게 떠나는가? 차라리 유학을 가지 말고 그 돈으로 빨간색 스포츠카를 샀어야 했어! 라고 통곡을 했던 것 같다. 통곡이었는지, 하소연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어쨌든 유학은 늘 나에게 동경의 대상이자 꿈이었다. 나는 운이 좋아 학교를 졸업하고 많은 세션과 일을 했다. 돈을 모았고 그 돈으로 차를 살지, 유학을 갈지 아주 심각하게 고민했다.

난 즉흥적이고 단순하다. 원래 무식한 자가 용감하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 유학을 가자! 떠나서 난 최고가 될 것이다. 으하하! 고마우신 아주머니는 나에게 공항에 내려서 택시를 타는 곳, 그리고 그 동네에 가려면 기사에게 팁은 어느 정도 줘야하는지 등등을 알려주셨다. 비행기가 달라스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밤 12시. 으슥하고 엄청나게 큰 공항이었다.

아주머니는 가시고 나는 택시 타는 곳으로 가서 택시를 잡았다. 운전사 아저씨는 고맙게도 나와 그 어마어마한 짐 보따리와 터진 보약을 안전하게 학교 앞 호텔에 데려다 주셨다. 고마움을 더 표현하고 싶었지만 영어가 서툴러 그러지도 못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씩씩하게 학교를 향해 걸어갔다. 원래는 바로 기숙사로 들어가야 했지만 비행기가 한 밤중에 도착한 지라 바로 가지 못했다.

 
 
집들은 띄엄띄엄 있고 차들은 가끔 다니고 걸어 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호텔 직원이 알려준 대로 주립대학교를 찾아 외국에서 온 학생들이 영어를 배우는 랭귀지스쿨에 도착하여 외국인 학생들을 도와주는 데일 선생님을 만났다. 나는 서투른 영어로 어제 밤에 도착했고 아직 기숙사에 못 들어갔는데 짐은 호텔에 있다, 뭐 이렇게 설명했더니 전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엄청나게 놀라는 말투였다.

동양 여자애가 오밤중에 혼자서 그 많은 짐을 가지고 택시를 타고 호텔에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잘 아는 사람도 연고도 없이 왔다는 것에 분명 측은지심을 느꼈으리라. 준비를 이렇게 안하고 무작정 이렇게 유학길에 오른 것도 참 재즈스럽다. 데일은 나를 안전하게 기숙사에 정착하게 등록시켜주고 호텔에 가서 이민 가방들과 터진 보약을 옮겨주셨다. 기숙사에는 깐깐해 보이는 안경 쓴 어린 미국 여자애가 방을 같이 쓰기로 되어 있었다. 하이, 코리안 뭐 이런 것 말고는 할 말도 없었다. 그날 밤 배가 고파서 가지고 간 마른 오징어를 구워 먹었더니 나의 룸메이트는 학교 경찰을 불렀다. 사람 타는 냄새가 난다고. 참으로 난처했다. 어쨌든 난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싸준 보약 대부분을 버려야했다.

그 다음날 함박눈이 내리는 캠퍼스를 터벅 터벅 걸으며 수업을 듣는 건물로 갔다. 건물이 잠겨 있었다. 사람도 없었다.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일본인 여성이 있었는데 영어를 꽤 잘했다. 자기도 어제 왔다고 했다. 오늘 학교에 왔는데 왜 문이 닫힌지 모르겠다고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많이 챙겨줬다. 그날 알았다. 텍사스에는 눈이 좀처럼 오지 않으며 눈이 오면 사람들이 운전을 못해서 모든 기관들이 문을 닫는다고. 그래서 학교도 문을 닫았다고 한다. 그 충격으로 요즘도 가끔 눈이 오면 학교를 가야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배장은 서경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