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 속마음 잘 읽어야 지구촌 경쟁시대서 생존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 마음산책(127회)] 지피지기 백전백승

기사입력 : 2017.11.29 09:13 (최종수정 2017.11.29 09:13)

금년 미 프로야구에서 있었던 일이다. 보도에 따르면,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 진출한 시카고 컵스(Chicago Cubs)는 그야말로 ‘고난의 원정길’에 올랐다. 컵스 선수단은 현지 시각으로 13일 오후 12시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도착했다. 이동에만 10시간이 걸렸다.

이들은 전날 워싱턴DC에서 디비전시리즈 5차전 경기를 치렀다. 워싱턴DC에서 LA까지는 직항 비행기로 5시간이면 올 수 있는 거리이었다. 전세기를 이용하는 컵스 선수단이 이동하는데 두 배의 시간이 걸린 것은 중간에 선수단 가족 중 한 명이 비행기 안에서 몸에 이상을 호소하는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 가족을 치료하기 위해 비행기가 경로 중간에 있는 뉴멕시코(New Mexico)주 알버커키(Albuquerque)에 착륙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전세기 조종을 맡은 기장의 업무 할당 시간이 끝나버렸고, 컵스 선수단은 알버커키에서 새로운 기장이 올 때까지 5시간을 기다렸다 다시 LA로 향했다는 것이다.

이 기사를 읽으며 필자는 오래 전 미국 시카고대학교 유학시절에 경험했던 일이 떠올랐다. 시카고에 도착한 지 며칠이 되지 않았을 때 미국의 대도시를 구경하고 싶은 마음에 시내버스를 타고 시내 중심부로 나갔다. 다운타운에 있는 박물관과 백화점을 구경하고 다시 시카고대학교 근처의 숙소로 돌아오기 위해 시내버스를 탔다. 얼마를 달리던 버스가 정거장에 멈추더니 운전기사가 내리는 것이 아닌가?

수많은 강대국 외침에 시달린 한국

다른 민족 문화 수용하는 데 소극적

결국에는 나라 빼앗긴 쓰라린 경험

필자는 버스운전 기사가 생리적인 현상이 급해서 버스에서 내려 근처의 화장실을 찾아갔는 줄 알았다. 그런데 조금 후에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새로운 버스 운전기사가 올라타더니 마치 지금까지 그 버스를 운전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버스를 운전하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혹시 버스가 엉뚱한 사람들에게 납치되어 이상한 곳으로 끌려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승객 중 어느 한 사람도 걱정하거나 불안해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채 각자 자기의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다른 승객들의 모습을 보고 필자도 어느 정도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왜 도중에 버스 운전기사가 바뀌었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겨우 용기를 내서 기사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버스 운전기사는 필자를 한번 힐끗 쳐다보더니 별일도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전 버스 운전기사의 근무시간이 바로 그 정거장에서 끝났다. 그래서 자기와 교대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전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아무리 근무시간이 끝났다고 해도 어떻게 운행 중에 기사가 바뀔 수 있을지 서울에서만 살아본 필자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처음부터 도중에 교대하게 근무시간을 편성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종점에까지 가서 바꾸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한번 조금 더 운행했다면 다음 번에는 조금 일찍 교대를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이후에도 미국에 살면서 이런저런 충격적인 사건을 많이 겪었다. 기독교인인 필자는 미국에 도착한 다음 처음 맞는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려고 서툰 영어로 물어물어 교회를 찾았다. 그런데 겉모습이 멀쩡한 교회가 일요일에 문을 닫고 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신자들이 적어서 교회가 문을 닫았는 줄 알고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서 다른 교회를 찾아갔다. 그런데 그 교회도 멀쩡한 모습과는 달리 문을 닫고 예배를 드리지 않았다. 너무 충격을 받아 할 수 없이 다시 기숙사로 돌아와 아내와 함께 가정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너무 불안해졌다.

익숙한 환경에서 생활하다 낯선 다른 곳으로 여행을 하거나 거주지를 옮긴 경우에는 ‘문화충격’을 겪는다. 문화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을 알아야 한다.
익숙한 환경에서 생활하다 낯선 다른 곳으로 여행을 하거나 거주지를 옮긴 경우에는 ‘문화충격’을 겪는다. 문화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을 알아야 한다.

시카고는 유명한 갱두목인 알 카포네(Alphonse Capone, 1899-1947)가 활동하던 곳이고, 세계에서 제일 큰 도살장이 있던 곳이라는 불안한 이야기는 익히 들어서 알았지만 실제로 멀쩡한 교회가 두 곳이나 문을 닫는 곳이라면 지금도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생각만 해도 불안했다.

그 다음 날 같은 기숙사에 사는 필자보다 일 년 먼저 유학 온 친지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더니 큰 소리로 웃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그 사유를 설명해주었다. 시카고대학교 주변 지역에는 교회가 다섯 곳이 있는데 8월 한 달 동안에는 모두 문을 닫는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이래저래 휴가철이기 때문에 교인들이 적게 나오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휴가철에 교인들이 적게 나온다고 교회문을 닫고 예배를 안 드린다니! 그것도 한 달 씩이나! 만약 8월 달에 예배를 드리고 싶으면 시카고대학교 채플은 여니 그것에서 드리면 된단다. 9월이 되니 정말 다섯 교회가 모두 문을 열고 예배를 드렸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염원하지만

미‧중‧일과 갈등에 북한의 핵 고집

원만한 외교로 풀어낼 때 가능

‘문화충격’이라고 부르는 이런 당황스런 경험은 아마 익숙한 환경에서 생활하다 낯선 다른 곳으로 여행을 가거나 거주지를 옮긴 경우에는 다 경험하는 현상이다. 이럴 때 처음 경험하게 되는 낯선 곳에 대해 사전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훨씬 적응하기 쉬을 것이다. ‘지피지기 백전백승(知彼知己百戰百勝)’이라는 한자성어의 교훈도 개인 간의 관계에서는 물론이지만 단체끼리나 심지어는 국가 간의 외교나 거래 또는 전쟁에서도 적용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참이던 1944년 6월 미국 국무부는 저명한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Ruth Fulton Benedict, 1887-1948)에게 일본에 대해 연구해달라고 의뢰했다. 이 결과 탄생한 책이 그 유명한 『국화와 칼』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외부 사람에게는 이해될 수 없고 일관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일본 사람의 행동 및 성격을 ‘문화’라는 관점에서 접근하였다. ‘국화’는 평화를 상징하며, ‘칼’은 전쟁을 상징하는데, 이를 통해 국화(평화)를 사랑하면서도 칼(전쟁)을 숭상하는 일본인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해부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함께 많이 거론되는 인물이 미국과 맞서 싸운 일본 연합함대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꾸(山本 五十六, 1884-1943)이다. 그는 미국 유학 및 주미 일본 대사관에서 근무한 경험을 통해 미국 문화를 경험하였다. 그는 미국의 경제력과 잠재력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야마모토는 미국과 전쟁을 주장하는 육군 강경파에 맞서 전쟁을 반대하였다.

어느 쪽이 옳았는지는 결과가 증명해주고 있다. 적국의 문화를 알고 그에 대응하는 전략을 짠 미국이 결국 야마모토의 예상대로 승리하였다. “잠자던 거인을 깨웠다”는 우려에 찬 그의 독백은 그 후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는 오늘날처럼 ‘지구촌’ 시대에는 더욱더 필요하다. 이제는 태어난 지역이나 국가에 한정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지구의 구석구석을 여행하거나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을 자주 만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나’와 다른 ‘너’와 얼마나 원활한 관계를 맺느냐가 생존에 꼭 필요한 필수 요인이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리적 조건으로 우리는 많은 외침에 시달렸다. 이 결과 단일민족임을 자랑으로 내세우고 다른 민족이나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소극적이었다. 그 결과 결국 나라를 빼앗기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신세로 전락했던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다. 지구촌 시대인 지금도 대학에 문화인류학과가 거의 없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지금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염원하지만 이는 우리의 노력은 물론이고 주변 국가들과의 원만한 외교를 통해 가능할 것이다. 중국과의 ‘사드(SAAD)’ 갈등, 일본과의 ‘위안부’ 갈등, 미국과의 ‘무역’ 갈등은 말할 것도 없고 핵무장을 고집하는 북한과의 갈등 해결은 결국 ‘지피지기 백전백승’의 교훈을 실천할 때만 가능할 것이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고려대 한성열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