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욕구, 생리적 욕구~ 자기실현 욕구까지 5단계로 이루어져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140회)] 김정은위원장의 딜레마

기사입력 : 2018.06.07 11:25 (최종수정 2018.06.07 11:25)

“변덕이 죽 끓듯 한다”는 말이 있다. 말이나 행동을 몹시 이랬다저랬다 한다는 말이다. 요즘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정상적인 국가 간의 외교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양국 정상이 ‘만난다’ ‘안 만난다’ 를 반복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말이나 행동이 일관되지 못하고 이랬다저랬다 하는 이유는 어느 한 쪽으로 결정하기 쉽지 않다는 뜻이다. 특히 ‘비핵화’를 결정해야 하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마음이 몹시 복잡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왜 북한은 결정을 내리기 힘이 들까?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여러 타당한 설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심리적인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 이유를 쉽게 헤아릴 수 있다.

양국 정상 북미 정상회담 앞두고
많은 사람들 어리둥절하게 만들어

유명한 심리학자 매슬로(A. Maslow, 1908~1970년)는 인간의 다양한 욕구는 단계적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자신의 삶을 의미 있고 값있게 만드는 개인적인 목표를 추구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런 욕구는 타고난 것으로 욕구들은 강도와 중요성에 따라 계층적 단계로 배열되어 있다. 이 ‘욕구 단계론’에 따르면 인간의 욕구는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생존) 욕구’부터 ‘안전의 욕구’ ‘소속과 사랑의 욕구’를 거쳐 최상위의 단계인 ‘자기실현의 욕구’까지 5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낮은 단계의 욕구가 어느 정도나마 해결되어야 다음 욕구가 나타난다. 만약 해당 단계에서의 욕구가 만족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이행하지 않고 계속 그 단계에 머물러 있게 된다.

이 욕구 단계를 쉽게 말로 설명하면, 사람은 무엇보다 먼저 ‘먹고 사는’ 일이 어느 정도 해결되어 좀 더 세련된 욕구를 느끼게 된다. 너무 궁핍해 오늘 일해야 내일 겨우 입에 풀칠이라도 할 생활에서는 사실 윤리니 도덕이니 하는 것들도 사치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먹고 사는 게 어느 정도 해결되면 사람들은 그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욕구가 생긴다. 집을 장만하고 담을 높게 쌓는다. 그리고는 당장 오늘의 안전을 도모할 뿐만 아니라 미래의 안전을 위해 저축을 하고 보험을 든다. 든든한 직장을 선호하고 노후에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을 찾는다.

심리적으로 안전하다고 느껴지면 다음에는 다른 사람들과의 원만한 관계가 중요해지고 사교적인 활동을 하게 된다. 특히 남들이 볼 때 인정을 해주는 사회적으로 ‘폼’ 나는 단체의 회원에 가입하고 차에 단체 로고를 붙이고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같은 계층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신분을 드러낼 수 있는 일을 좋아한다. 다음에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살 맛이 난다. 동시에 스스로 자신이 “괜찮게 살고 있고 성공했다”라고 느낄 때 신이 난다. 이들에게는 밥은 한 끼 굶을 수 있지만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김정은 위원장 비핵화 결단 임박
마음이 복잡해 쉽게 결정 못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5월 26일 오후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후 헤어지며 포옹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5월 26일 오후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후 헤어지며 포옹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런 단계들이 어느 정도 만족이 되면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로 발휘하는 것이 중요한 마지막 단계가 나타난다. 이제는 남과 비교하거나 남의 인정을 받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자신의 재능, 능력,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기 위해 노력한다. 자기실현을 위해 특별히 창조적이거나 예술적일 필요는 없다. 학생, 운동선수, 노동자 모두 최선을 다해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면 되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세상의 권력이나 평가는 별로 의미가 없다. 이들은 식당을 찾기보다 오히려 재료를 준비해서 입맛에 맞는 대로 자신이 직접 요리하는 것을 더욱 즐긴다.

매슬로의 ‘욕구단계설’은 주로 개인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이론이다. 하지만 이 이론은 집단의 행동에도 적용할 수 있다. 즉 특정한 집단도 하나의 단위로 대부분의 집단원이 이런 단계를 공통으로 거치면서 자신들의 욕구를 실현하려고 노력한다고 볼 수 있다. 짧은 시간 안에 세계가 놀랄 만한 정치적·경제적 발전을 이룩한 우리나라가 좋은 예이다.

6·25 전쟁을 겪으면서 완전히 폐허가 된 남한은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엇보다 먼저 ‘먹고 사는’ 문제에 직면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상황에서는 체면 차릴 겨를도 없었다. 국가적 체면도 뒤로 하고 외국에 ‘원조’를 구걸하면서 살아남기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했다.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명분도 “도탄(塗炭)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는 것이었다.

생리적 요구 해결 후 '안전' 중요
안보 외부의 적 가정해야 효력 발생

어느 정도 생리적 욕구가 해결된 다음에는 ‘안전’이 중요해졌다. 소위 ‘안보(安保)’라는 이름으로 ‘자유’는 억제당하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이었다. 안보는 외부의 적을 가정해야만 효력을 발생할 수 있다. 안보는 위협을 먹고 살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북한은 ‘주적’이 되었다. 언제 또 남침할지 모르는 호전적인 북한이 버티고 있는 한 ‘자유’니 ‘민주’니 하는 것은 ‘배고파 본 적이 없는 철부지들’의 배부른 투정으로 치부하였다.

여기에서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딜레마가 시작되었다. 생존과 안전의 욕구가 어느 정도 해결되자 국민 사이에서 그 다음 욕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사랑과 소속의 욕구를 해결해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동안 억제되었던 민주화의 욕구가 거세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평생 ‘군인정신’으로 무장된 ‘안전의 욕구’에 사로잡힌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는 민주화는 또다시 혼란과 가난으로 퇴행하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조금만 더 자신이 통치하면서 허리띠를 졸라매면 영원히 생존과 안전의 욕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다음 단계로 나가지 못한 지도자는 국민과 심한 갈등을 빚기 시작했고, 변할 수 없는 것을 감지한 심복의 손에 최후를 마쳤다.

지금 김정은 위원장도 똑같은 딜레마에 빠져 있을 것이다. 국가가 필요한 생필품을 ‘배급’하는 사회주의 경제는 붕괴되어 가고 있다. 동시에 주민들은 살기 위해 ‘장마당’을 통해 필수품을 사고팔면서 시장경제의 원리를 배워가고 있다. 이제는 ‘필요에 따른 세상’에서 ‘능력에 따른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 그리고 외부의 정보들을 접하면서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시야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장마당’ 경제가 활성화되면 점차로 민주화에 대한 욕구가 터져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다만 시기와 방법만이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지도부는 아직도 ‘선군(先軍) 정치’를 통해 국민을 ‘안전의 욕구’ 단계로 붙잡아두려고 노력해 왔다. 이 정책이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계속 외부의 ‘위험’을 강조해야만 했고, 동시에 자위(自衛)에 필요한 ‘핵무기’의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을 널리 선전해 왔다. 이 전략도 냉엄한 국제질서와 외부에서 유입되는 정보 앞에서 더 이상 효력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장마당' 통해 시장경제 원리 학습
'우물안 개구리' 시야서 탈피 시작

김정은 위원장도 북한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개혁·개방’이라는 것을 내심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뜻 이 정책을 실시할 수 없는 이유는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면 국민 속에서 민주화에 대한 욕구가 분출되고 마침내는 체제가 무너질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계속 독재를 할 경우 자신의 안위가 위험할 것이라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김정은 딜레마의 본질이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은 위원장은 오늘도 두려운 마음으로 ‘할까?’ ‘말까?’ 사이를 여러 번 오갈 것이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