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는 3대 못간다?…조용히 4대까지 승계 'LG의 기업문화'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142회)] “부자 삼대 못 간다”는 속설을 깬 LG 그룹의 힘

기사입력 : 2018.07.04 11:25 (최종수정 2018.07.04 11:25)

국내의 대표적인 재벌 기업인 LG그룹에서 ‘4세대 후계자’가 나왔다. 국내 10대 그룹 가운데 ‘4세대 총수’가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에 재계뿐만 아니라 시중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형제의 난’ 등 세대교체에 따른 불미스런 모습을 많이 보아온 터라 조용히 4세대까지 승계를 가능하게 하는 LG의 기업 문화에 대해서까지 관심이 쏠렸다. 전임 회장의 와병 중에 사실상 그룹을 경영해온 전임회장의 동생은 회사의 전통에 따라 경영 일선에서 전면 퇴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뒷말 없이 자연스럽게 그룹 경영권이 후세대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시키고 그룹을 발전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한국 재벌의 변천사(變遷史)를 살펴보면 3대는커녕 자식 대(代)에서 사실 대부분의 회사가 망하거나 오히려 규모가 줄어드는 경우도 많다. 이런 현상은 재벌 그룹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이나 조그만 개인 사업에 이르기까지 3대를 이어가지 못하고 역사 속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죽하면 “부자 삼대 못 간다”는 속설까지 있을까?

이유는 다양하다. 외환위기와 같은 외부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거함이 쓰러지듯 대기업 집단이 망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급변하는 정치적 격랑 속에서 적응을 제대로 못 해 부침을 거듭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선대가 일구어온 회사를 2대가 물려받아 성급하게 사세를 확장하려고 시도하거나 무모하고 방만한 경영을 하는 바람에 견실한 기업을 물려받았지만 결국 회사의 간판을 내리거나 다른 기업에 팔리는 신세를 겪는 경우도 많다.

한국 계벌의 변천사 3대는커녕
자식 대에서 회사 대부분 망해
오히려 규모 줄어드는 경우 많아

구광모 ㈜LG 대표이사 회장.
구광모 ㈜LG 대표이사 회장.

부모가 일군 사업이 왜 자녀에게 세습된 후 결국 망하게 되는지에 대해 ‘부모와의 동일시’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자녀는 부모를 닮아가거나 또는 심리적으로 배척하면서 성장해간다. 즉 ‘동일시(同一視)’를 하면서 독립된 개체로 성장해간다. 동일시는 자기가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사람태도, 가치관, 행동 등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여 가는 과정을 말한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람의 행동과 말투, 사고방식과 닮게 된다. 동일시는 ‘긍정적’ 동일시와 ‘부정적’ 동일시로 세분할 수 있다.

긍정적 동일시는 ‘닮고 싶은’ 것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나도 아버지(어머니)처럼 살겠다”는 마음이다. 일반적으로 ‘역할모델’이라는 말로도 바꿀 수 있다. 긍정적 동일시의 경우, 닮고 싶은 대상이 현실적으로 명확히 존재하기 때문에 그대로 모방하면서 닮아갈 수 있다. ‘사회학습’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모방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배워나간다. 처음으로 뷔페 식당에 간 사람은 익숙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따라하면서 행동 요령을 익히게 된다. 불안하거나 두려운 상황에서는 더군다나 다른 사람의 행동을 모방한다. 그리고 그 대상이 자신과 친밀하면 할수록 더욱 모방하게 된다. 따라서 성공한 부모와 긍정적 동일시를 하는 사람은 성공할 확률이 높다. 자발적으로 부모와 동일한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은 이유이다.

반대로 부정적 동일시는 ‘닮지 않고 싶은’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나는 아버지(어머니)처럼 살지 않을 거야” 라고 다짐하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역할모델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그렇게 되지 않겠다’는 의미에서의 부정적 역할모델이다. 이 경우에도 아무런 역할모델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경우보다는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부정적 동일시의 경우에는 되고 싶은 방향을 제시해줄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누구처럼 되고 싶지 않은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되고 싶다는 목표를 정할 수는 없기 때문에 긍정적 동일시보다 많은 시행착오를 할 수 밖에 없다.

외환위기 같은 외부충격 못견디고
거함 쓰러지듯 대기업들 부침 거듭
사세확장 시도하다 간판 내리기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17일 서울 강서구 마곡 R&D 단지에서 열린 혁신성장 보고대회에서 LG유플러스 관계자로부터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17일 서울 강서구 마곡 R&D 단지에서 열린 혁신성장 보고대회에서 LG유플러스 관계자로부터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동일시의 대상은 누구나 될 수 있다.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대상이라도 너무나 존경해서 그렇게 살고 싶은 모델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위대한 인물들의 전기를 읽는 이유도 그들과 긍정적 동일시를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동일시의 대상은 일반적으로 부모나 형제, 또는 스승이나 배우자처럼 자신의 인격 형성과 삶에 큰 영향을 주는 ‘중요한 타인들(significant others)’이 된다. 그 중에서도 제일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 부모이다. 우리는 부모를 닮아가거나 또는 배척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물론 자신이 부모를 좋아하거나 싫어한다는 사실을 의식할 수도 있고, 또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특히 부정적 동일시의 경우에는 무의식적으로 작동할 개연성이 크다.

긍정적 혹은 부정적 동일시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객관적이고 사회적인 평가이다. 만약 자신의 부모가 사회적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거나 존경을 받는 경우 그 자녀는 부모와 긍정적 동일시를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대로 부모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거나 실패했을 경우 부정적 동일시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부모를 구태여 닮으려고 하는 자녀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일시는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판단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비록 사회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한 부모라고 할지라도 자녀와 좋은 관계를 맺는 경우 얼마든지 긍정적 동일시가 일어날 수 있다. 대조적으로 사회적으로는 큰 성공을 한 부모라고 할지라도 자녀의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부정적 동일시가 일어날 수 있다.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대기업의 회장일지라도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럴 경우 자녀의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부정적 동일시가 일어날 수 있다.

부모에 대해 부정적 동일시를 하는 자녀가 회사를 물려받았을 경우, 그는 아버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회사를 경영하려고 할 수 있다. 부모가 이룩한 업적을 그대로 물려가는 경우 부모와 다른 삶을 살아가려는 자신의 무의식적 소망을 이룰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사업의 다각화 등 다양한 명분을 통해 준비되지 못하거나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는 분야에 무모한 투자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런 조건에서 성공해야만 아버지와 다른 자신의 삶이 인정받을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더구나 부모로부터 충분히 그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성장한 경우, 부모와 다른 업적을 통해 인정받으려는 무의식적 소망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는 부모와 같은 업종에만 매진하는 것은 결국 부모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결국 그 그늘 속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기생(寄生)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부모에게 능력 인정받지 못할 경우
다른 업적 통해 인정 받으려 노력

앞으로 LG그룹을 이끌어나갈 젊은 경영자가 취임 인사말에서 “그동안 LG가 쌓아온 고객가치 창조, 인간존중, 정도경영이라는 자산을 계승·발전시킬 것”이라면서 “변화가 필요한 부분은 개선하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장기반을 구축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이 말을 긍정적 동일시가 이루어진 관계의 전형적인 표현이다. 대(代)를 이어 긍정적 동일시가 일어나는 가문(家門)의 힘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한성열 교수
한성열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