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은 종교적"…종교인·무종교인 구분은 무의미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152회)] 탈종교인가? 탈기존 종교인가?

기사입력 : 2019.01.09 12:59 (최종수정 2019.01.09 13:33)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모든 인간은 자신의 실존적 문제를 해결하고 삶과 죽음의 궁극적 의미를 발견하려는 본성을 가졌다고 전제한다면 사람은 본질적으로 '종교적 존재(Homo Religious)'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종교인' 또는 '무종교인'이라는 분류 자체가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자신을 어떻게 규정하든지에 관계없이 종교적이기 때문이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을 분류하면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ce)'다. 호모(Homo)는 '순수하다'는 의미이고 사피엔스(Sapience)의 뜻은 '이성적'이다. 즉, 학명에 나타난 인간의 의미는 순수하게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생물이다. 아마 사람에게 순수하게 이성적이라는 별칭을 붙였을 때 그 의미는 인간만이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해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그 의미를 추구하는 생명체라는 특징을 부여한 것이 아닐까? 인간은 'Homo Sapience'로 사는 순간부터 'Homo Religious'라는 의미와도 일맥상통할 것이다. 최근의 인류학 연구에 의하면 원시인들에게도 인생의 궁극목적에 대한 탐구의 흔적이 나타나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서구와 마찬가지로 종교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종교들이 내부 혁신을 통해 끊임없이 변하지 않으면 사람들로부터 더욱 더 외면받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도 서구와 마찬가지로 종교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종교들이 내부 혁신을 통해 끊임없이 변하지 않으면 사람들로부터 더욱 더 외면받게 될 것이다.

인간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삶과 죽음 의미 발견 본성 지녀

하지만 종교(宗敎)를 '특정한 믿음을 공유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신앙 공동체와 그들이 가진 신앙 체계나 문화적 체계'라고 좁게 정의한다면 종교는 최소한 다음의 세 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첫째는, 종교의 대상인 절대자 곧 종교의 교의(敎義)가 있어야 한다. 둘째는, 종교행위를 하는 인간이 지켜야 하는 종교윤리이며, 셋째는, 절대자와의 관계를 구체화하고 그 관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종교의식(宗敎儀式)이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등 세계적 종교들은 모두 나름대로 이 세 가지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런 큰 교세를 가진 종교들뿐만 아니라 수없이 많은 크기의 지역 종교들이 지금도 각각의 교의와 윤리 그리고 의식을 갖추고 사람들의 본질적인 요구에 부응하면서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현재의 세계적 종교들도 처음에는 한 지역의 종교로 기능하다가 점점 그 세력을 넓혀 지금은 세계적인 종교로 성장해온 것이다.

역사학자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 1889-1975)는 "역사는 유기체적인 문명의 생멸의 과정"이라고 정의하면서, 역사의 기초를 '문명'에 두었다. 그는 문명 그 자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비유하고 문명은 생멸(生滅)의 과정을 겪는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 생멸이 바로 역사이고, 그 생멸에는 일정한 규칙성이 있다고 보았다. 즉 문명은 발생, 성장, 해체의 과정을 주기적으로 되풀이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문명의 추진력이 고차문명의 저차문명에 대한 '도전' 과 '응전'의 상호 작용에 있다고 주장했다. 도전에 적절하게 대응하면 그 문명은 계속 성장하고 번성하지만, 반대로 도전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결국 해체된다.

인간만이 삶과 죽음 이성적 생각
원시인도 인생 탐구 흔적 나타나

20세기의 대표적 신학자 중의 한 사람인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는 "문화의 핵심은 종교이고, 문화는 종교의 양식(樣式)"이라고 주장하였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Homo Sapience)의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추구하면서 생사에 대한 두려움을 뛰어넘는 삶을 살고자하는 열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을 제공해주는 것이 바로 종교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Homo Religious'인 것이다. 하지만 그 궁극적 탐구에 대한 해답은 동서고금을 통해 동일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문화의 영향을 받고 특정 모습을 띠고 나타난다. 틸리히의 언명을 토인비의 역사관에 대입하면, 종교는 문화이기 때문에 생멸의 과정을 겪는다. 그리고 외부의 도전에 적절히 응전하면 그 종교는 살아남아 계속 성장하지만, 만약 도전에 적절히 응전하지 못하면 도태되고 결국 해체될 것이다.

현재까지 세계 종교로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종교들도 각 지역과 그 시대 그 지역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가장 인간적인 질문(도전)에 제일 효과적으로 대답(응전)하고 기능했을 것이다. 그 결과 수없이 많은 작은 종교들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과정에서 살아남아 지역과 시간을 초월하여 세계종교로 성장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세계적으로 교세를 확장하며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계속 종교 자체도 크고 작은 변화를 능동적으로 수용하면서 각각의 시대의 특징적인 요구를 효과적으로 만족시켜 주었을 것이다.

각 종교의 핵심 교의는 계속 유지되어야 하지만, 그 교의가 현실 속에서 구체화된 제도와 의식(儀式)은 지속적으로 변해야 문명처럼 기존 종교도 계속 살아남을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자신을 무종교인이라고 생각하는 수가 종교인이라고 여기는 사람보다 더 많아졌다. 2016년 12월 19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인구주택 총조사 표본집계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종교인구는 총 2155만 명(43.9%), 무종교 인구는 2750만 명(56.1%)으로 무종교 인구가 595만 명가량 더 많다. 종교인은 2005년보다 9.0% 감소했다. 이번 조사에서 특징적인 것은 1995년부터 처음 실시된 후 처음으로 '종교가 없다'고 답한 무종교인의 비율이 처음으로 절반을 넘은 것이다.

이 현상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드디어 우리나라에서도 '탈종교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는 물론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현상도 아니고 서구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절대자와의 관계 구체화 겨냥한
기독교 등 각각 윤리·의식 갖춰

다시 한번 종교인과 비종교인의 기준을 생각해보자. 앞에 언급한 조사에서 전체 조사 대상자 중에서 개신교를 믿는다는 사람이 19.7%(967만명)이었고, 불교를 믿는다는 사람은 15.5%(761만명)로 나타났다. 천주교는 7.9%(389만명)이었다. 종교가 있다고 답한 국민의 98.3%가 이 세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원불교·유교·천도교 등이 뒤를 이었다.

그렇다면 '무종교인'은 위에 언급된 기존의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단순히 기존에 존재하는 제도화된 종교를 믿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이들도 '종교적'이긴 하지만 그 해답을 더 이상 기존의 종교에서 찾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무종교인이라고 자신을 규정한 사람의 수가 많아졌다는 것은 '탈종교화'를 의미하는 것이라기보다 '탈기존 종교화'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존의 종교가 앞으로 새로 나타나게 될 새로운 형태의 모든 종교를 다 포함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탈기존 종교화' 현상은 기존의 제도적 종교가 더 이상 현대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그래서 21세기 4차 산업사회에서 생활하는 현대인이 더 이상 기존의 종교에서는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또 다른 종교를 찾아 기존의 제도적 종교를 떠나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기존의 종교는 줄어드는 신도수를 단지 '탈종교화' 시대의 증표로 생각하고 시대의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현재의 제도가 과연 21세기에 적합한지를 심사숙고하여 과감하게 변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종교도 살고 더불어 인간도 살 길이 아닐까. 2000년 전에 한 부족의 종교였던 유대교에서 세계적 종교인 기독교가 탄생했다. 또한 그 기독교가 500년 전에 시대적 상황과 신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해 결국 '종교개혁'이 일어나 개신교가 나타났다. 현재의 기존의 종교들은 또다시 '종교개혁'의 결단을 안에서 내리지 못한다면 결국 쇠퇴해지거나, 아니면 밖에서부터의 거센 '저항(Protestant)'에 부딪힐 것이다.

'Homo Religious'로서의 인간 본성이 변하지 않는 한 결국 'Homo Sapience'인 인간은 자신의 질문에 만족스런 해답을 주는 자신의 종교를 찾아 '탈기존 종교화'를 계속 추구해 나갈 것이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