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어떻게 대처하는지 따라 우리 삶의 질 결정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157회)] 대리자아는 나의 힘

기사입력 : 2019.03.27 16:41 (최종수정 2019.04.01 11:08)

살아오면서 예기치 못한 두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몸도 마음도 굳어버린다. 우리는 적정한 수준의 불안을 유지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현실을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등 다양한 책략을 사용한다.
살아오면서 예기치 못한 두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몸도 마음도 굳어버린다. 우리는 적정한 수준의 불안을 유지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현실을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등 다양한 책략을 사용한다.
구태여 실존주의와 같은 어려운 철학사조의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인간의 삶은 근원적으로 불안한 것이라는 것은 시중의 장삼이사(張三李四)도 쉽게 알 수 있다. 신처럼 완전하지 못하면서도 끊임없이 신과 같이 되려고 노력하는 인간의 본질이 불안한 삶을 필연적으로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피할 수 없는 불안에 어떻게 대처하는지의 여부가 삶의 질과 양태를 결정한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불안에 직면할 때 사람들은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대응한다. 첫째는 그 불안을 회피하고 도망가는 것이다(flee). 길을 가다가 예상치 못한 뱀을 발견하게 된다면 십중팔구 사람들은 도망갈 것이다. 뱀이라는 불안의 원천으로부터 멀리 벗어나는 방식으로 불안에 대처하는 것이다.

​보통사람들 불안에 직면시 대응 방식
대부분 회피하거나 도망하는 길 선택

둘째는 문자 그대로 얼어붙는 것이다(freeze). 살아오면서 예기치 못한 두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머리 속으로는 ‘도망가야 해’ 하고 계속 생각하지만 몸이 굳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꼼짝없이 한 자리에 머물러 있었던 경험이 있다면 ‘얼어붙었다’는 말의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영화를 보면 새로 전장에 투입된 신병이 처음 나가 전쟁터에서 총을 쏘지 못하고 멍하니 얼어붙어 있을 때 고참병이 “움직여”라는 명령과 함께 팔을 잡아끌어야 비로소 정신 차리고 응사(應射) 하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셋째 방법은 불안에 맞서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fight). 불안을 야기하는 상황이나 사건에서 도망치거나 얼어붙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맞서서 그 상황이나 사건을 해결하여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요즘처럼 취업이 어려울 때, 도서관에서 열심히 준비하여 당당히 자신이 원하는 곳에 합격을 하는 것이다. 또는 지나치게 높은 목표를 정하고 계속 실패하기보다는 자신의 실력과 적성에 맞는 곳을 선택하여 취업을 하여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불안에 대처하는 세 가지 방식(free, freeze, fight)의 영어 단어의 앞 글자를 따서 ‘3F’라고 줄여 부르기도 한다. 이 중에서 ‘fight’ 방식이 제일 바람직하고 성숙한 방식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잘 알 것이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서 보면 이런 방식으로 불안에 대처하는 사람은 생각보다는 적다. 그 이유는 성숙한 삶은 구호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명령이나 조언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각자의 마음의 힘, 즉 ‘자아강도(自我强度)’에 의해 자동적으로 결정된다.

현실과 접촉하며 주어진 과제를 해결해나가는 심리적 기능을 담당하는 부분을 ‘자아’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자아는 태어날 때에는 거의 현실적인 과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갓난아이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그의 무능력한 자아를 대신할 수 있는 ‘대리자아(代理自我)’의 도움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경우 갓난아이의 대리자아는 부모 특히 어머니가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조부모나 다른 양육자가 맡기도 한다.

어린이는 성장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자아를 키워나간다. 즉,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른다. 시행착오(試行錯誤)를 거듭하면서 성공뿐만 아니라 실패를 통해서도 불안에 대처하고 과제를 성취하는 힘을 키워나간다. 이처럼 경험에 의해 길러지는 자아강도는 사람에 따라 다른다. 다시 말하면 사람에 따라 불안에 대처하는 방식이 다르다. 이처럼 불안에 대처하는 방식을 ‘자아의 방어기제(防禦機制)’ 또는 ‘적응기제(適應機制)’라고 부른다.

문제에 맞서서 적극적 해결 노력 중요
시행착오 통해 성취하는 힘도 길러져

방어기제의 역할은 지나친 불안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즉 지나친 불안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방어’하여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fight) 하는 것이다. 우리 몸을 예로 들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숙면을 취하기 위해 적당한 체온을 유지해야 한다. 자는 동안 몸이 더우면 자연적으로 이불을 차낸다. 그러다가 다시 몸이 추워지면 이불을 끌어당겨 덮는다. 이런 과정을 하루 밤에도 여러 번 되풀이하면서 적정한 체온을 유지하며 숙면을 취한다. 이런 행동은 의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도 적정한 수준의 불안을 유지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다양한 책략을 사용한다. 즉 다양한 방어기제를 무의식적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자신이 주로 어떤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지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동일한 방어기제를 되풀이 사용하게 된다.

가장 기본적인 방어기제는 현실을 ‘부정(否定)’하거나 ‘왜곡(歪曲)’하는 것이다. 부정은 불안을 야기하는 현실적인 여건이나 상황이 ‘없다’라고 지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갑자기 예기치 못한 불행한 일을 경험했을 때 대부분 처음에 나타나는 반응은 “그럴 리가 없다” 또는 “우리 가족이 아닐 것이다” 등이다.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반응이다. 갑자기 예기치 못한 큰 불안을 경험하게 되면 우리는 처음에는 자동적으로 ‘회피(free)’하거나 ‘도망(flee)’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즉 현실을 부정한다.

‘왜곡’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현실을 ‘마음속에서’ 바꾸는 것이다. 즉 그런 현실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 의미를 주관적으로 축소하거나 확대해서 불안수준을 변경시키는 것이다. 특정 분야의 취업시험에 떨어진 수험생이 “실제로는 그 분야가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잘 됐다”라고 합리화를 하는 것이다.

부정과 왜곡은 현실을 변경시키지만 우리에게는 유용한 삶의 지혜이다. 만약 우리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현실적인 과제나 사건이 계속 된다면 우리는 삶 자체를 유지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방어’기제인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지속되거나 자신이나 타인에게 심각한 해를 끼칠 경우에는 심각한 문제가 된다.

현실은 아무리 힘들더라도 직시(直視)해야만 효율적으로 적응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아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감당할 수 있는 객관적 현실의 정확성은 자아강도에 비례한다. 자아가 강할수록 현실을 부정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직면할 수 있다. 만약 조직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리더(長)가 지속적으로 현실을 부정하거나 왜곡한다면 조직 전체에 큰 해를 끼칠 수 있다.

현실에 효율적으로 적응하기 위해 사용한 자신의 방어기제가 실제로는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또 다른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하고 다른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것도 큰 힘을 필요로 한다. 즉 강한 자아가 필요하다. 대개의 경우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현실을 부정하거나 왜곡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과 비슷한 생각과 방어기제를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는 불안이 해소되지 않는다. 오히려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불안이 더해지기 때문에 부정과 왜곡의 경향이 더욱 강화될 뿐이다.

자신이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신(神)이 아니라고 인정하는 것이 불안을 극복하고 현실적으로 성숙하게 살아가는 지름길이 된다. 왜냐하면 자신이 부족한 것을 깨달으면 대리자아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능력을 가진 대리자아들을 곁에 두고 있는 능력이 지도자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것이 자신과 조직이 사는 길이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