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와 확대 재생산으론 후발주자 못 벗어난다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161회)] 창의적 풍토 조성이 먼저

기사입력 : 2019.05.22 16:31 (최종수정 2019.05.23 09:58)

가면 갈수로 머리가 좋은 것, 즉 지능보다는 창의성(創意性)이 더 중요해진다는 것은 이제 거의 상식에 가깝다. 이미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세기의 바둑 대결에서 ‘입신(入神)’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바둑 9단도 1승밖에 올리지 못하고 4패를 하면서 더 이상 자연지능은 인공지능에 이기기 어렵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입증되었다.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를 비롯한 어느 조직에서도 지속적으로 살아남아 성과를 올리려면 창의성을 계발하고 창의력이 뛰어난 인재를 영입하는 데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새로 취임한 고려대학교 정진택 총장도 개교 114주년 기념식사에서 “오늘날의 세상은 누가 새로운 것을 남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잘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 복제와 확대 재생산으로서는 후발주자의 한계를 영원히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이론과 개념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야만이 변화의 시대에 역사의 주역으로 세상을 선도할 것입니다.”라고 창의성을 강조했다.

어른 말을 고분고분 잘 듣는 아이보다 남다른 기질을 살려서 상상력을 발휘해야 창의적인 인재가 된다.
어른 말을 고분고분 잘 듣는 아이보다 남다른 기질을 살려서 상상력을 발휘해야 창의적인 인재가 된다.

창의성 연구 분야에서 세계적인 학자로 인정받는 윌리엄메리대학교(College of William and Mary)의 김경희 교수가 최근에 지금까지의 연구를 총정리한 『미래의 교육』(예문아카이브)을 출간하였다. 창의력을 “유용하면서도 독특한 것을 만들거나 행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하는 김 교수가 세계적인 학자로 발돋음 하게 된 연구는 2010년 7월 10자 <뉴스위크>의 커버스토리에 소개된 연구 결과 때문이었다. ‘미국의 창의력 위기’라는 제목으로 김 교수의 연구가 소개되자 미국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이 연구에서 김 교수는 한 마디로 “미국의 창의력이 줄어들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뉴스위크>는 이 기사에서 “김 교수는 1990년대 후반까지는 지능지수(IQ)와 마찬가지로 창의력 점수도 꾸준히 올랐으나, 1990년대 후반 이후로는 창의력 점수가 서서히 내리막길로 움직였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라고 보도하면서 “또한 유치원생부터 초등학교까지의 아이들에게 이러한 하락세가 가장 심각하다”는 사실도 아울러 밝혔다.

​지능보다 창의성이 더 중요한 것
이세돌-알파고 바둑 대결서 증명

우리나라에서도 가정이나 학교 등에서 창의성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에 김 교수의 이론을 조금 자세히 소개한다(※ 이 소개 과정에서 김 교수의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부분이 많음을 미리 밝혀둔다). 창의성의 본질과 아이들에게 창의력을 가르치는 최선의 방법을 이해하기 위해 김경희 교수의 자신이 개발한 CAT 이론을 소개한다. CAT는 혁신의 3단계를 의미한다. 혁신은 창의적 과정의 마지막 결과물로서 ‘유용하면서 독특한 아이디어, 지적재산, 발명, 상품, 서비스’이다. 혁신의 3단계는 ‘창의적 풍토(Climate)’를 조성하는 1단계, ‘창의적 태도(Attitude)’를 기르는 2단계, 그리고 ‘창의적 사고(Thinking skill)’를 창의과정에 적용하는 3단계이다.

창의적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창작물이나 창작자보다는 ‘창의적 풍토’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풍토는 부모와 교육자가 손을 쓸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풍토는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인간관계, 장소, 시간 등 물리적 심리적 환경 및 상태’를 모두 아우른다. 풍토는 개인의 정서적 심리적 건강을 촉진하는 창의적 잠재력을 살리는 것을 비롯해 개인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에도 영향을 미친다. 또 최종 창작물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평가도 풍토에 포함되는데, 이를 통해 창작물의 가치 여부가 결정된다.

어렸을 때 과수원에서 성장한 김 교수가 자신의 경험을 이용해 창의력이 자라는 것을 사과나무가 성장하는 것을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 사과나무가 튼튼하게 무럭무럭 자라려면 밝은 햇살, 거센 비바람, 다양한 토양, 자유로운 공간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창의력이 튼튼하게 크려면 4S 풍토, 즉 햇살 풍토(sun), 비바람 풍토(storm), 토양 풍토(soil),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간 풍토(space)가 필요하다.

첫째 밝은 햇살풍토는 아이에게 큰 꿈을 주고 호기심을 격려한다. 태양이 외딴 구석까지 온 세상을 비추는 것처럼 어떤 인물이나 경험이 아이에게 큰 꿈과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햇빛이 사과나무가 태양을 향해 자라도록 끌어당기는 것처럼, 그 인물이나 경험이 아이에게 ‘나도 저 인물처럼 되고 싶다’ 또는 ‘나도 저것을 하고 싶다’고 만들어서 그 인물이나 그것을 향해 자라도록 이끌어준다. 즉, 어떤 것을 잘하기 전에, 그것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 먼저다.

두 번째로 거센 비바람 풍토는 아이가 뚜렷하고 높은 목표를 세우고 시련을 극복하게 도와준다. 거센 비바람 덕분에 나뭇가지가 튼튼하게 자라서 나중에 무겁고 큰 사과도 잘 지탱하게 되듯이, 아이가 어릴 때의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면서 더 큰 시련도 이겨낼 수 있는 강인함을 계발하게 된다. 비바람 풍토는 아이가 뚜렷하고 높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일찍부터 아이에게 지속적으로 칭찬과 훈육을 한다.

개인·국가뿐만 아니라 조직서도
성과 올리는 인재 영입이 중요

아이가 좋아하는 ‘무엇’을 가장 잘 해서 전문성이 계발되기 시작하면 그것이 창의적 ‘열망(passion)’으로 발전한다. 즉 어떤 것을 좋아해서 그것을 잘하게 되면 그것에 최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열망이 생겨서 그것에 행복하게 몰입하게 된다.

세 번째는 다양한 토양 풍토이다. 다양한 사람, 경험, 관점 등 온갖 종류의 이질성을 접하게 하는 다양한 토양 풍토는 아이가 이질적인 경험과 관점을 통합하게 도와준다. 한 가지 성분이 다른 성분의 결핍을 메울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토양 성분은 사과나무의 성장에 필수적이다. 토양 풍토는 아이가 한 가지 관점만 고수하는 대신에, 남에게 배우려는 개방적 태도로 여러 관점을 고려해서 판단하게 한다. 사과나무가 다른 나무와 교차수분을 할 경우에 더 좋은 사과를 맺을 수 있듯이, 아이가 전문성 교류를 하면 타인의 강점이나 관점으로 자신의 감정을 강화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자유로운 공간 풍토이다. 자유로운 공간 풍토는 아이가 독특하고 깊은 생각을 할 여유와 자유를 제공한다. 농부가 사과나무들이 저마다 다르리라고 예상하고 이를 존중하듯이, 공간 풍토는 아이의 특성, 기질, 선호도가 남과 다른 것을 존중한다. 농부가 사과나무들이 제 형태나 크기대로 마음껏 자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듯이, 공간 풍토는 아이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마음껏 표현하면서 자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마련한다. 이런 여유와 자유 안에서는 아이가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지면, 상상력을 키우고 자신의 튀는 기질을 발견해서 독특한 착상을 할 수 있게 된다.

아이가 풍토에 반응하는 방식인 ‘태도’도 중요하다. 토양 풍토는 다양한 사람, 문화, 종교, 의견을 아이에게 소개해준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로부터 이득을 취하려면 아이가 그런 경험 가운데 일부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거나 흥미를 느껴야 한다. 두 아이가 똑같은 풍토에 노출되더라도 각자의 창의적 태도에 따라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 창의적 태도는 창의적 행동을 하게 만드는 개인의 특성이나 성격 습관을 말한다. 창의적 태도는 창의적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

​아이들에 큰 꿈 주고 호기심 격려
감정 마음껏 표현할 공간도 제공

창의적 태도는 어떤 때는 부정적일 수도 있다. 특히 반(反)창의적인 풍토에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더욱 부정적으로 비친다. 미래의 혁신가, 즉 어린 혁신가의 창의적 태도가 남들 눈에 부정적으로 비친 것을 선인장에 비유할 수 있다. 사람들은 선인장이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것이라고 기대하기보다는 가시로 뒤덮인 몸통을 먼저 생각한다.

어른 말을 고분고분 잘 듣고 시험 잘 치는 아이가 아니라, 가시와 같은 창의적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린 혁신가가 성공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보다는 문제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창의적 태도는 혁신의 필수조건이다, 창의적 태도로 남다른 튀는 기질을 살려서 기존 지식과 원칙을 거스르면서 남의 주저함과 거절을 넘어서, 상상력을 발휘하게 된다. 어린 혁신가는 희소한 자원에 적응하는 법을 배워 멘토나 다른 전문가와 전문성 교류를 확대하고 좌절과 역경을 배움의 기회로 삼아 자신의 결함과 실패를 극복해서 마침내 독특한 착상을 혁신으로 탈바꿈시켜서 이 세상을 이롭게 만든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