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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달항아리서 자연의 숨결 느끼고 삶의 상처 치유 받는다

기사입력 : 2020-09-02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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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선 입선작, '고개 너머 어머니의 품', 162.2×130.3 cm, Water Color on Paper
검푸른 파도에 날개를 다쳐 본 사람은 꿈꾼다/ 시뻘건 가마에 나를 구워 더 단단해지기를/ 내 마음에 애잔함과 그리움이 더는 스며들지 않기를/ 해체된 중력으로 미래의 사과밭을 일굴 수 있기를// 바다에 가본 사람들은 깨닫는다/ 달항아리가 능구렁이처럼 똬리를 틀고 있으면 끌려간 도공들이 나타난다는 것을/ 안개 낀 저녁, 비 내리는 공원 모퉁이/ 애잔하게 서 있는 여인이 깊은 사색에 빠져 있다는 것을/ 대나무 숲이 위로한다는 것을// 내 손이 닳도록 달항아리 그리면 인간들은 자연과 화해를 시도할까나/ (낯선 발언, 장석용)

문서진(Moon Seo Jin)은 항아리를 빚는 심정으로 달항아리를 그리는 서양화가이다. 범상찮은 기운을 받아 병오년 구월 초순 진주에서 태어난 그녀는 남자 둘, 여자 하나라는 자식 구도에서 푸른 말을 위한 놀이터가 그녀의 것이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각종 사생대회에서 입선과 특선을 도맡아 했고, 중·고교에서 그림을 부지런히 그려 미대와 대학원에 진학, 최종 학력은 홍익대 미술대학원 회화과, 문서진은 깔끔하고 품격있게 자신의 작품을 발표해 왔다.

문서진의 회화는 공중파의 다수 드라마에 착상되었고, 작가는 SBS의 ‘컬처클럽’과 OBS의 ‘이 주의 화제 현장’ 등에 초대되었다. 그녀는 달항아리 작가 40여 명 중 탁월한 미학적 안목과 상업적 가변성을 소지한 작가로서 항아리 그림에 자신의 심상을 투영시켜왔다. 그녀의 그림은 늘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 산 명제의 대상이 된다. 문서진을 관통하는 으뜸어는 ‘익숙함과 낮섬의 사이를 오감’이다. 문 작가는 지난 7월과 8월 경매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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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진 작 'Mind Vessel', 33.4×21.2cm, mixed media,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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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진 작 'Mind Vessel', 53.0×45.5cm, Mixed media

​각종 사생대회서 입선·특선 도맡아
깔끔하고 품격있게 자신의 작품 발표

문서진은 국립현대미술관 주최의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수채화 부문과 양화 부문에서 입선한 적이 있다. 그녀는 1995년부터 예술의 전당, KBS 방송국, 인천계양문화예술회관, 오산시립미술관 등에서 11회의 개인전, ARTRIE 갤러리에서의 2인전 초대전, 국내외 초대전 및 단체전 120여 회를 기록했다. 88서울올림픽이 열리던 때 안산에 화실을 마련한 이래, 오산, 수원 등으로 옮겨 다니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녀는 여러 곳에서 서양화 지도 강사를 맡고 있다.

문 작가는 수채화로 풍경과 삶의 이야기를 그리다가 추상을 거쳐 주제와 대상을 선택했다. 국전 입선 해인 1990년부터의 사실주의, 1994년부터 항아리, 매병, 문병 등을 등장시키고 혼합재료를 사용하여 시간의 흔적을 표현한 사유의 ‘정적’시리즈, 2000년 들어 양립할 수 없는 현실과 미래를 공존시키는 ‘Zero Mass(무중력)’ 시리즈, 훈민정음과 주전자 자기 등 이미지의 언어화, 현재의 달항아리 작업에 이른다. 원상(原像)과 유사한 달항아리들은 경탄을 자아낸다.

새 세기 들어 일군(一群)의 작가들은 유행처럼 번진 극사실 화풍의 작업을 선호했다. 문서진은 초현실주의의 변주를 넘어 2010년부터 달항아리 창작에 매진해오고 있다. 달항아리 작품들은 초기 달항아리 속에 인간들의 삶의 흔적을 풀어헤치는 소소한 인생사에서부터 푸른 바다의 일렁이는 파도를 배경으로 하는 소용돌이를 스쳐 간다. 문 작가는 달항아리 속에 한 송이 꽃이나 열매를 담아내던 단순함을 탈피, 이제 달항아리 자체만을 표현하는 상층구조를 구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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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진 작 '정적', 53.0×45.5cm, Mixed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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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진 작. '정적', 53.0×45.5 cm, Mixed media

‘달항아리’는 정제된 색상, 굴절된 묘사도 잘 어우러진다. 시간의 흔적이거나 환각을 보이게 하며 미래의 모습을 바라보는 투시경과도 같다. 작가는 도자기의 표면에서 드러난 담백하고 담담하며 현실에 긍정하는 순수한 마음, 소박한 서민들의 일상 속에서 드러난 감성을 좋아한다. 2000년대에 발표한 <숨결시리즈>와 <Time & Space> 시리즈는 전통적인 구상회화의 범주를 벗어나 ‘도기’와 ‘다기’의 일루전을 화면의 주제로 활용하되, 우리 민족의 ‘얼과 숨결’이 살아나도록 하는 표현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다. 전통적인 항아리, 민속품 등이 실루엣으로 표현되며 잔잔한 바다나 안개 낀 도시풍경 등이 배경이 되기도 한 <Intimate but Odd, 익숙하지만 낯선> 시리즈는 예술성과 사회성을 동시에 소지한 작업이었다.

문서진의 작품은 일상적 중력의 개념이 해체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사유의 산물을 보여주었고, 시선을 작품 속으로 몰입시키려는 지혜와 유혹의 메시지를 던졌다. 자기(주전자, 청자, 백자, 달항아리)가 주소재로 활용되었고, 자기 속에 명암과 상태 등을 고려한 일상 및 그녀의 작품들은 작가의 영혼이었다. 상상의 형상들을 삽입시켜 복합화면을 구성, 영감을 부르는 독보적 그림들로 점차 진화되어갔다. 문서진이 조선의 달항아리 창작에 집중하는 것은 잃어버린 감수성을 회복시키고 자연의 숨결을 느끼고 삶의 상처를 치유하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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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프 아트 서울 초대전, '정적', 90.9×65.1cm, Mixed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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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진 작 '정적', 72.7×60.6cm, Mixed media

​수채화로 공중파 다수 드라마에 착상
탁월한 미학 안목 그림 심상에 투영

문서진의 회화 구도는 중앙집중형이며 사색을 부른다. 사과를 바닷물 위에 떠 있게 하거나 도자기가 공중에 떠 있는 모습을 그리다가, 실루엣이 중요한 상황에서 가장자리만 묘사하며 풍경과 대비되는 그림으로, 잔잔한 바다 위에 거대한 ‘달항아리’가 부유하게 한다. ‘달항아리’는 정원(正圓)이 아니므로 회화적이다. 원초적 바다는 우주의 부속이다. 작가는 얇게 부서지는 파도를 정체와 요동의 물 사이에 존치시킨다. 바다의 색상도 엷은 초록, 온순하고 조용한 바다를 상징한다. 나무의 희생이 없이 달항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의 작가 노트에는 달항아리 창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 있다. 「‘달항아리’는 구(球)에 가까우나 완벽한 원(圓)으로 이루어진 구가 아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보이며, 그것은 마치 원거리에서 보면 완전한 구처럼 보이나 가까이서 바라보면 울퉁불퉁한 지구의 표면과도 같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하나의 ‘우주’ 혹은 ‘행성’이라고 본다. 아울러 나는 이 하나의 작은 우주에 세상을 담아보기로 했다. 사각형의 캔버스에 구와 같은 공간이 다시 설정되고, 외곽에 그려진 공간은 마치 그림 속의 액자처럼 부속 공간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그려지는 공간이 구에 한정되게 함으로써, 긴장감을 강화하고 싶다. 그리고 좀 더 밀도와 깊이가 더해지는 회화를 이룩하고 싶다.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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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진 서양화가


문서진은 ‘어머니의 품’ 및 ‘색채의 향연’을 슬기롭게 넘어 ‘정적’ 시절로 돌입한다. 작가는 독창성과 세련된 기교로 ‘달항아리’ 속에 도시환경과 사람 살아가는 세상 이야기 등의 익숙한 소재를 통해 보편적 삶의 정서를 생동감 있게 풀어냈다. 소재와 색감의 변화 속에 작가의 영감이 화폭에 덧칠되어 있다. 질감을 살리기 위한 수만 개의 작은 클릭을 만들고 작품을 완성한다. 문서진은 운명에 순응하면서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는 K-Artist이다. 더욱 정진하여 화가로서 미술사에 이름을 남기고 무궁 영화를 누리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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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진 작 'Mind Vessel', 53.0×45.5cm, mixed media, 2019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