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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없는 자리에선 나랏님도 욕한다'…욕에서 삶의 불가분한 요소

기사입력 : 2020-09-09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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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욕과 비아냥 등 비속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욕은 더 심한 욕을 불러오므로 어서 하루 빨리 욕할 필요가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
최근에 욕(辱)하고 관련된 두 가지 에피소드가 언론에 소개되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종교단체의 대표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그는 “대통령을 욕해서 기분이 풀리면 그것도 좋은 일”라고 말했다고 소개되었다. 또 하나는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인종차별에 대해 시위하던 중 한 여성이 경찰에게 영어로 욕을 하다가 그의 명찰을 보고 한국계인 것을 알고는 한국말로 고래고래 악을 쓰며 저속한 욕을 하는 장면이 미국 매체에 소개된 것이다. 그 여성은 경찰이 대꾸를 안 하자 계속 따라가면서 도발적인 욕을 해댔다.

‘없는 자리에선 나라님도 욕한다’는 옛말도 있는 것을 보면 욕은 우리 삶에 일상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오죽 일상화되어 있으면 그 지고지엄(至高至嚴)한 임금에 대해서도 욕을 할까? 전 세계 거의 모든 문화에서 욕을 한다. 다만 욕의 내용이나 빈도 그리고 그 강도가 문화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오죽하면 예수님도 욕을 했다는 사실이 성서에도 여러 번 나와 있다. 그만큼 욕은 우리 삶에서 거의 불가분의 요소이다.

욕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모욕적인 말이나 남을 저주하는 말”이다. 또한, 욕은 “아랫사람의 잘못을 꾸짖음”이기도 하다. 이 뜻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욕은 나쁜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고 저주하는 말은 당연히 사용하면 안 된다. 그래서 모든 가정이나 학교에서 어린이들에게 욕을 하지 말라고 교육하고 욕을 하는 경우에는 처벌한다. 하지만 그렇게 교육해도 욕을 하는 것은, 욕이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즉, 욕에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부정적 요인 외에 순기능을 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다면 세계 모든 문화에서 욕이 사라지지 않고 존재한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없다.

따라서 일상생활에서 많이 사용되는 욕을 단순히 그 내용에만 관심을 가지면 욕의 다양한 기능을 이해할 수 없다. 욕의 기능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을뿐더러, 그 의미와 용도는 매우 다양하고 섬세하다. 욕은 누가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하는지에 따라 그 의미가 사뭇 달라진다. 연전에 방영된 공익광고의 내용 중에 출산(出産)하는 딸을 옆에서 지켜본 친정어머니가 “내 새끼가 새끼 낳느라 욕봤다”는 내용이 있었다. ‘새끼’라는 말은 당연히 비속어(卑俗語)이고 욕이 될 수도 있는 말이다. 하지만 친정어머니가 모진 산고(産苦)를 겪고 무사히 출산한 딸을 욕하고 있다고 받아들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산고를 겪는 딸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애탔던 어머니의 안도감과 엄마가 된 딸을 대견해하는 마음이 잘 드러난 기막힌 표현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강도에서 차이날 뿐 세계 모든 문화에 욕 존재
'예수님도 욕을 했다'는 사실 성서에도 나와

심리학적으로 볼 때, 욕의 중요한 순기능은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억압된 욕구가 표현되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이라고 손가락질받을 생각이나 감정을 느끼는 경우가 자주 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수도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부당하게 괴롭히는 상사의 면전에 사직서를 집어 던지면서 속 시원히 “개××” 라고 욕하고 당당히 사무실을 나서는 장면을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은 마음속으로 생각만 하는 것이지 실제로 행동으로 옮긴다면 당연히 비난이나 처벌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담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나 감정을 숨기고 겉으로는 태연한 체하며 살아간다. 이렇게 감정을 속이는 것을 ‘은폐(隱閉)’라고 한다.

은폐를하면 사회생활을 원활히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래저래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사는 사람은 없다”고 자위하면서, 은폐하면서까지 사회생활을 잘 하는 자신에게 자긍심(自矜心)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은폐에는 비용이 따른다. 우리는 감정과 행동을 일관되게 하려는 본성이 있다. 화가 났을 때는 화를 내고, 기쁠 때는 기뻐하고, 슬플 때는 슬퍼하는 것이 제일 자연스럽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감정과 일치하는 행동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처럼 감정과 행동이 일치될 때 감정의 응어리가 남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을 속이면, 즉 감정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감정은 항상 행동으로 표현되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정을 은폐하기 위해서는 심리적 에너지가 필요하다. 즉 에너지가 은폐시키는 데 사용된다. 그리고 속마음이 행등으로 드러날까 경계하며 감시(監視)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심리적 에너지가 소모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솔직한 생각이나 감정을 감추고 살아간다. 왜냐하면 마치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비난하는 것처럼 우리 자신도 우리의 생각이나 감정을 비도덕적이라거나 비윤리적이라고 비난하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속에서 우리를 비난하는 역할은 ‘양심(良心)’이 한다. 양심은 뜻 그래도 ‘좋은 마음’이다. 양심은 어렸을 때부터 학습된 것으로, 사회적 가치가 도덕, 윤리 등이 ‘내재화(內在化)’된 것이다.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생각이나 행동을 할 때, 우리의 양심이 제동을 걸거나 처벌한다. 즉 양심의 가책(呵責)을 받는다. 이런 과정은 다른 사람에게 비난받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부적절한 생각이나 감정을 무의식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리고 자신은 그런 생각이나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다.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책도 받지 않는다. 이런 심리적 과정을 ‘억압(抑壓)’이라고 부른다. 억압은 양심의 가책으로 인한 과도한 긴장이나 불안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순기능을 한다.

은폐와 마찬가지로 억압을 사용하는 데는 많은 심리적 에너지가 소모된다. 생각이나 감정은 외부로 표현되고 해소(解消)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런 힘을 억압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억압은 은폐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사용되어야 한다. 은폐와 달리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감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억압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특징이 ‘경직(硬直)’되어 있는 것도 심리적 에너지가 속마음을 감추는 데 묶여있고, 무의식 속에 있는 속마음이 들킬까 봐 항상 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끼'라는 말, 비속어지만 여러 의미 담겨
순기능 의식·무의식적 억압된 욕구가 표현

프로이트(Sigmund Freud)에 의하면, 우리의 기본적 욕망은 ‘성욕’과 ‘공격욕’이다. 이 두 가지 욕구는 거의 본능에 가깝다. 본능이란 태어날 때부터 이미 가지고 있는 욕구라는 뜻이다. 이 두 욕구가 정제되지 않은 모습으로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면 범죄가 된다. 왜냐하면 이 욕구는 반사회적(反社會的)이기 때문에 욕구가 일어난 즉시 만족을 위해 행동으로 옮긴다면 사회는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는 도덕이나 윤리라는 잣대를 가지고 그런 행동이 사회가 인정하는 방식대로 만족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행동을 통제한다. 가장 보편적인 통제가 ‘범죄’라고 규정하고 처벌하는 것이다.

마음속에서 제일 많이 억압되는 내용은 공격성과 성욕이다. 사회가 인정하지 않은 때와 대상에게 공격성과 성욕이 일어나면, 억압한다. 그렇지만 억압을 한다고 해서 생각이나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억제를 하거나 의식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해소되지 않은 감정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된다. 그중 하나가 바로 욕을 통해 억압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욕의 내용 중에 ‘죽인다’는 내용이 많은 것과, 성과 관련된 성기(性器)나 성행위를 암시하는 비속어를 많이 사용하는 이유이다. 간접적으로나마 어느 정도 감정을 해소하려고 하는 것이다. 서두에서 인용한 “대통령을 욕해서 기분이 풀리면 그것도 좋은 일”이란 말의 뜻이 바로 이런 억압된 에너지가 해방되면 기분이 풀리게 되고, 결과적으로 좋은 일이라는 내용이 담긴 것이다. 화(火가)나면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사회적 처벌이 따르므로 직접 죽이지는 못하고 ‘죽인다’는 말을 하면서 간접적으로 자신이 상대에게 화가 났다는 것을 표현한다.

우리 문화를 ‘한의 문화’라고 부른다. 한자 ‘한(恨)’은 ‘마음속의 감정이 풀리지 못하고 멈추어있다’는 뜻이다. 억울한 감정이 표현되지 못하고 마음속에 남아있으면 한이 된다. 예로부터 우리의 보통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억울한 일을 많이 경험하고 살아왔다. 권력과 지위와 재산 등으로 힘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왔기 때문에 마음속에 쌓인 ‘억울하고 억하 심정’이 표현되지 못한 채 쌓여 한이 맺힌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그동안 쌓여있는 한을 일시에 풀어내려는 일종의 ‘한풀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여기저기서 욕과 비아냥 등 비속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욕은 더 심한 욕을 불러오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보다 더 건강하고 성숙한 사회로 가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일 수도 있다. 이 과정을 통해 그동안 말 못 하고 쌓아두었던 한이 풀리고 너그럽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공감하는 성숙한 사회로 가고 있다. 욕을 안 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욕할 필요가 없는 사회가 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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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