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14 (수)

사건의 선행 조건 갖추어지면 집단합의에 대한 강한 욕구 발생

기사입력 : 2020-12-02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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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 행정부가 쿠바의 카스트로를 제거하기 위해 감행한 피그만 침공사건.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져 진실을 보지 못해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40대의 젊은 나이에 미국 35대 대통령이 된 케네디(J. F. Kennedy)는 야심찬 정책을 펴나가고 있었다. 1960년 쿠바는 공산혁명을 주도한 카스트로(Fidel Castro)가 집권하여 반미(反美) 정책을 펴나가기 시작했다. 이전 부패했던 정권에서 불의한 이익을 보던 소수의 사람은 대부분 미국으로 망명하여 정권 재탈환을 꿈꾸고 있었다. 당시는 미국과 소련 사이에 냉전(冷戰)이 한참 고조되던 시대이었기에 미국의 입장에서는 턱밑에서 반미 정책을 펴고 있는 카스트로가 눈에 박힌 가시 같은 존재가 됐다. 케네디 행정부는 이런 상황에서 카스트로를 제거하기 위한 계획을 입안하였고, 이 법안은 국무회의에서 의결되어 1961년 실행되었다. 압도적인 성공을 예상했던 이 계획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고, 소위 ‘피그만(灣) 침공사건’이라는 오명으로 불리고 있다.

사회심리학자 재니스(Irving Janis)는 당시의 국무회의 의사록을 분석하여 계획을 심의하던 국무회의가 집단사고의 병폐(病弊)를 드러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집단사고를 "집단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동조의 압력 때문에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합의에 도달하는 현상"이라고 정의하면서, 피그만 침공사건 외에 미국의 외교정책 중에 집단사고로 파국적인 결과를 얻은 예로 존슨(Lyndon B. Johnson) 행정부의 월남전 확전(擴戰), 닉슨(Richard Nixon) 행정부의 워터게이트 도청사건 등을 열거하고 있다.

​카스트로 제거 법안 국무회의에서 의결
참담한 실패로…피그만 침공사건 오명

위에 예로 든 사례에서 공통점은 강력한 정치적 힘을 가진 소수의 정치가가 외부의 반대 목소리나 결정을 뒤엎었을 정보로부터 차단된 중요한 결정을 했다는 점이다. 또한 이 소수의 집단은 강력한 힘을 가진 대통령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의 공통점을 찾아가면서 재니스는 집단사고가 일어나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다. 먼저 집단사고가 일어나는 선행 조건은 다음 여섯 가지이다. 첫째, 정책 입안자들 사이의 강한 응집력, 둘째 외부 영향력으로부터 차단, 셋째 지시적인 리더, 넷째 대안적 안건에 대한 사려 깊은 고려(考慮)의 결여, 다섯째 리더가 제시한 의견 외에 더 좋은 해결방안이 찾기 어렵다고 느껴지는 상황에서 외부 위협 때문에 받는 심한 스트레스 등이다.

이와 같은 선행 조건들이 갖추어지면 집단합의에 대한 강한 욕구가 일어난다. 즉 집단사고를 하게 된다. 이런 집단사고는 다음과 같은 증상(症狀)들을 나타나게 된다. 첫째 잘못될 리 없다는 환상, 둘째 집단의 도덕성에 대한 강한 신념, 셋째 집단적 합리화, 넷째 외부 집단에 대한 고정관념, 다섯째 자신들의 결정에 대한 회의(懷疑)와 이견(異見)에 대한 자기-검열, 여섯째 만장일치의 환상, 일곱째 다른 의견을 가진 집단원에 대한 직접적 압력, 여덟째 다른 의견이나 정보로부터 집단원을 지키기 위한 보호자로 자칭(自稱) 등이다.

위에서 열거한 집단사고의 증상들이 나타났을 때 이를 제 때에 시정하지 못하면 결국 파국적 결정을 하게 된다. 이런 파국적 결정의 증상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대안적 안건에 대한 불완전한 조사, 둘째, 집단의 목표에 대한 불완전한 조사, 셋째 선호하는 선택의 위험성에 대한 탐색의 실패, 넷째 거부된 대안들에 대한 재평가의 실패, 다섯째 적절한 정보에 대한 빈약한 조사, 여섯째 수집된 정보에 대한 선택적 편향(偏向), 일곱째 긴급한 사태에 대한 사전 계획의 결여 등이다.

이런 파국적 결정의 결과는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올 확률이 몹시 낮다는 것이다. 재니스는 이런 파국적 결말을 막고, 집단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여러 가지 제안을 하였다. 먼저 그는 집단 지도자(leader)는 각각의 집단원들이 제안된 결정에 대해 자유롭게 반대와 의심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분위기를 성공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리더는 그의 생각에 대한 비판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지도자는 토론에서 처음에는 중립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도자는 집단원들이 각자의 견해를 모두 개진한 후에 자신이 선호하는 결정이나 의견을 발표해야 한다. 셋째 집단을 소집단으로 나누어서 안건에 대해 집단마다 독립적으로 토론하여야 한다. 그런 후에 함께 모여 차이점에 대해 열띤 논쟁을 벌일 수 있어야 한다. 넷째, 때때로 집단 토론에 외부의 전문가들이 초대되어 집단원들의 견해에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 다섯째로, 각각의 모임에서 적어도 한 사람이상이 집단의 의견에 반대의견을 피력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물론 집단적인 의사결정 과정이 모두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위에 제시한 제안이 잘 지켜진다면 오히려 혼자 내리는 의사결정보다 집단이 모여 숙의한 후에 내리는 결정이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경우가 많다. 여러 사람이 모여 토의하는 이유 자체가 집단원들이 각자의 정보, 지식, 견해를 공유하고 적절한 검증을 받음으로 독자적인 결정보다 더 좋은 결정을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과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단으로 의사결정 하는 것 자체는 오히려 권장해야 한다. 다만 집단사고에 빠진 위험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어야 하고, 의사결정에서 지도자가 자신의 의견에 반하는 의견도 수용할 수 있는 포용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국내 정치권 여야 국정파트너로 불인정
'알아서 기는' 현상 집단사고 위험 노출

현재 우리나라는 집단토의 피해를 가장 심각하게 직면하고 있다. 정치권을 보더라도 여당과 야당은 상대방을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동일한 의견을 가진 소수의 사람이 밀실에 모여 지도자의 의견에 맹목적으로 따르는 형식적인 집단토의를 하고 있다. 그리고 당론(黨論)에 반하는 극소수의 의견을 묵살할 뿐만 아니라, 그 소수 의견자를 당에서 축출하는 강력한 처벌을 일삼고 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여당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야당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야당 안에서도 다양한 국정 타개책이 논의되기보다는 같은 당 안에서도 이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날선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즉 여당이나 야당이나 집단사고의 양상은 동일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소위 '알아서 기는' 현상이 나타나고 집단사고의 위험에 노출된다.

이런 현상은 물론 정부나 정치권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회사나 여타 조직체에서도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가 소수의 추종자들로 구성된 회의체를 만들어 형식상의 절차를 밟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족 내에서도 강력한 힘을 가진 가부장의 의견에 가족들은 변변한 의견 한번 내지 못하고 '일사불란(一絲不亂)'이라는 미명 아래 '한마음 한목소리'를 내도록 강요받고 있는 형편이다.

미국 정치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집단사고의 예로 케네디 행정부의 '피그만 침공사건'이 제일 먼저 거론되곤 하지만 케네디 대통령은 젊고 활기찬 성공적인 대통령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1961년 1월 20일 대통령 취임식에서 한 연설은 지금도 명연설로 회자되고 있다. 특히 취임사의 마지막 부분, "그렇기에 국민 여러분,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으십시오. 세계 시민 여러분, 미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지 말고, 우리들이 서로 힘을 합해 인간의 자유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으십시오.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미국 국민이건 세계 시민이건 간에 여기 있는 우리에게 우리가 여러분에게 요청하는 것과 똑같이 높은 수준의 힘과 희생을 요청하십시오."는 거의 60년이 지난 오늘날에서 많은 사람이 영어 원문으로 외울 정도로 인기가 있는 부분이다.

2017년 5월 10일 정오, 문재인 대통령도 역사에 남을 취임사를 하였다.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되는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습니다. 대통령부터 새로워지겠습니다. 우선 권위적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겠습니다...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도 바꾸겠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끝나야 합니다.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대화하겠습니다.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입니다.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습니다...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 일을 맡기겠습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3년 반 전의 이 명연설도 국민들 마음속에 각인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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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