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27 (수)

이고은, 발레블랑 '아케이드 프로젝트' 연출…무용극 안무틀에서 탈피 다양한 시도

기사입력 : 2020-12-09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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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은 안무의 '아케이드 프로젝트'(2016)
살아간다는 것의 한 방식/ 그리움 한 움큼 집어 들고/ 지용의 호수에 빠져든다/ 모두의 불빛 저편/ 현실과 유리된 발레리나는 점점 외계인이 되어 가고/ 차가운 공기와 밀폐된 발레교습소의 인공광에 길들어 갔다/ 삶은 분주한 행진곡의 변주/ 조용한 아침의 여유를 방해한다/ 그렇게 살아왔다/ 나의 삶은 떠난 자들의 과거/ 나는 현재를 개척한다/ 초콜릿 한 알의 마법을 깨고/ 블랙 스완과 짧은 치마의 남정(男丁)을 떠올리면/ 달콤한 하루가 다가온다

이고은(Rhee Ko-eun)은 병오년 성탄절 무렵 마산에서 태어났다. 오빠와 여동생과 함께 서울에서 성장한 그녀는 한국발레의 대부 임성남을 사사하고 뛰어난 실기력과 자신감으로 예원학교와 서울예고를 졸업했다. 부친 이창백과 모친 최위경을 비롯한 가족의 적극적 지지는 지금까지 그녀가 발레와 함께해온 존재 이유가 되었다. 그녀는 이화여대 무용과에서 한국발레를 각인시킨 홍정희 교수의 지도로 발레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 한양대에서 김복희 교수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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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은 안무의 'Shadow'(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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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은 안무의 'Shadow'(2018)


발레블랑의 대표로서 이고은은 분주함 그 자체다. 1989년 부산 여름무용축제에서 「엘리베이션」 의 안무 및 출연으로 자신의 이름을 무적(舞籍)에 올린 뒤 올해 성남아트센터 오페라 하우스에서 「발레 스타즈」의 총 예술·안무 감독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아직도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문학 소녀적 모습을 보여주었다. 「발레 스타즈」는 '해적' '파리의 불꽃' '로미오와 줄리엣' '다이아나&악테온' '그랑 파 클래식' '춘향' '돈키호테'의 파드되로 발레계 스타들을 무대에 선보인 명작의 갈라 공연이었다.

​한국발레 대부 임성남 사사하고 뛰어난 실기력 명성
이화여대 무용과에서 홍정희 교수 지도로 발레 전공

서강대 메리홀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는 또 다른 일정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분주하게 움직여야만 돌아가는 태엽처럼 봉사의 사역을 맡은 그녀는 천상 교육자였다. 발레는 자유를 구가하지만 엄격한 규칙을 따라야만 자유로워질 수 있는 양면성의 예술이다. 그녀는 수많은 작품 가운데 인상 깊은 안무·출연작 10선을 선정하고 자신의 발레 창작의 경향을 밝힌다. 연극적 요소와 발레를 접목한 '태양의 탄식'과 탱고를 접목한 「반도네온의 노래」(1997, 제1회 이고은 창작발표회)를 발표하면서 안무가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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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은 안무의 '명&암'(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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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은 안무의 '백색행복'(2005)


아르코 대극장에서 올린 첫 작품 「다프네는 어디에」(1999)는 고대 그리스 연극 양식을 빌려 출연진을 주인공들과 코러스로 나눠 안무하고 록 음악 등을 사용한 코미디 발레다. 「카드게임」(2004)은 발레블랑 정기공연 안무작으로 이고은이 세계 마술올림픽인 'FISM'에 다녀온 후 마술의 다양한 시도를 접목한 코미디 발레로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비틀어 풀이한 작품이다. 안무작 「늑대와 빨간 두건」(2005)은 '춤으로 클릭하는 동화'라는 어린이를 위한 발레 극으로 30여 회의 공연으로 이어졌고, 빨간 두건과 늑대를 맡은 무용수의 나이가 들면서 더는 공연하지 않기로 한 작품이다.

이고은은 1804년에 지어진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의 베르디 극장의 초대로 서울시립오페라단 이탈리아 공연작 「라 트라비아타」(2008)를 안무함으로써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현대 무용극으로 각색한 제33회 서울무용제 경연 부문 안무작 「푸른 피(부제1-Sangue Blu, 부제2-Green Eyes)」(2012)는 우수상, 남녀 연기상, 미술상을 휩쓸었고, 같은 해 대한민국무용 대상의 문화관광부 장관상을 받았다. 이고은은 발레 블랑의 「아케이드 프로젝트」(2016)를 안무·출연함으로써 무용극 안무 틀에서 벗어나 무용수들의 움직임만으로 무대를 채우는 현대적인 시도로 다양한 움직임들을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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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은 안무의 '백색행복'(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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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은 안무의 '얼음꽃'(2017)


'내일을 여는 춤'에서 안무·출연작 「지젤–얼음꽃」(2017)은 '포스트 예술상' 수상작으로써 중년의 안무가가 나이에 걸맞은 내면의 이야기를 소극장 솔로 작으로 풀어가는 첫 번째 시도이다. 자신의 갇혀진 내면을 공허한 공간에서 촛불에 의지하는 인간으로 표현했다. 이듬해의 '내일을 여는 춤'에서 안무·출연작 「SHADOW」(2018)은 소극장 솔로 작품 중 세 번째 작품으로써 극장에 접이의자 50개를 배열해 놓고 춤출 공간의 한계를 넘어 극적 요소를 차용, 대사하며 춤을 추면서 공허한 삶의 단면을 표현한다.

​자유 구가하지만 엄격한 규칙 따르는 자유로운 예술
'자아도취'의 '아(笌)' 안무·출연 자신의 건재 보여줘

「엘리베이션」에서의 출연 이래 그녀는 성남문화재단 주최의 '자아도취'의 「아(芽)」(2019)를 안무·출연함으로써 자신의 건재를 보여준다. 한국무용, 발레, 현대무용이 한 주제로 작품을 엮어가는 기획 공연작으로써 3m 높이의 벽 위를 걸어 다니며 의상과 연극과의 협업이 인상적이며 대사, 무용을 함께 했던 작품이다. 발레블랑 정기공연작 「Pas de Deux Suite」(2019)를 기획, 연출하여 발레블랑의 20~60대까지의 장점을 극대화하여 연령대별 대표 무용가들과 함께 짧은 2인무 5개를 엮어서 만든 작품이다. 성남아트센터 앙상블시어터에서 '발레 도슨트 이고은과 함께하는 발레 콘서트'(2019) 안무, 연출 및 출연, 포스트 극장에서 '내일을 여는 춤' 「SHADOW」(2020)의 안무 및 출연은 현역 발레리나의 빛나는 일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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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은(발레블랑대표, 안양예고 교사)

이고은은 예원학교, 서울예고, 한양대, 한예종의 강의 경험을 바탕으로 안양예고에서 발레 교사로 봉직하고 있다. 그녀는 한국무용문화포럼 상임이사, 대한민국 무용단체연합 부회장 등으로 발레 발전에 노력하는 무용가이다. 그녀는 언급된 수상 이외에도 「깜모떼 자크」(1997)로 서울 국제 무용제 연기상, 문예진흥원 신진예술가 지원금 수혜자 지정(1999), 한국발레연구학회 '올해의 인물상'(2011), 국립발레단 주최 창작팩토리(발레) 지원사업(제작) 선정 「이방인」(2013), 한국무용문화포럼 주관 최고안무가상 「프렐류드Ⅳ-베아뜨리체」(2014), 대한민국무용대상 '솔로&듀엣 부문' 베스트5 「프렐류드Ⅴ-현기증」(2015)에 이르는 성과를 이루었다. 아름다운 계절들을 반납하고 자신을 희생하여 예술을 살찌우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고은은 파리, 모스크바, 브뤼셀, 뉴욕, 바가노바, 아비뇽, 비엔나, 런던, 마드리드, 에센, 밴쿠버, 단학의 연수를 거쳐 코치 자격으로 '아시아 태평양 국제 발레 콩쿠르'(일본 도쿄), '바르나 국제 발레 콩쿠르'(불가리아), '로잔느 국제 발레 콩쿠르'(스위스), '베를린 국제 무용 콩쿠르'(독일)에 참가했다. 여름 열기로 홍향기-강민우, 박소현-윤별, 이수빈-김석주, 심현희-선호현, 박선미-한성우, 손유희-이현준, 박슬기-이재우라는 조합을 만들어 내는 이고은의 발레 직조력은 미래의 한류스타의 모습이다. 발레라는 멀지만 가까운 예술 장르로 즐거움을 창조해내며 내일의 예술을 만들어 가는 활기찬 모습에 경의를 보낸다. 그녀에게도 따뜻한 봄날의 추억과 황금빛 가을의 낭만을 듬뿍 누릴 날들이 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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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은 안무의 '자아도취-아(芽)'(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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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은 안무의 '푸른피'(2012)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