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14 (금)

청소년들 이상주의자 되고 현실세계와 다른 세계의 사회 '상상'

기사입력 : 2021-04-21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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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압축적인 경제발전을 겪었기 때문에 세태와 문화가 너무도 빨리 변했다. 사진=글로벌이코노믹
고려대 심리학부 허태균 교수는 2015년 『어쩌다 한국인』이라는 저서를 출판했다. 그 제목도 파격적이지만 그 내용도 제목 못지않게 파격적이고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그는 이 책에서 한국은 지금 사춘기를 겪고 있다고 단정한다.

사춘기는 소위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대' 혹은 '이유 없는 반항(反抗)의 시대'라고 명명되고 있다. 하지만 사춘기 또는 청소년기의 특징을 잘 이해하면 '질풍노도'가 '이유 없는 반항'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청소년기는 말 그대로 '(청)소년'과 '청(소)년'이 함께 공존하는 시기다. 즉, 어린이(소년)와 어른(청년)의 두 시기의 특성이 함께 섞여 있다. 마치 지진처럼, 두 마음의 판이 충돌하면서 기존의 질서가 파괴되고 큰 갈등의 에너지가 발생한다. 한 사람 안에 어린이와 어른이 공존하니 자신도 갈등이 많을 뿐만 아니라(질풍노도), 주위 사람들도 그 행동을 예측할 수 없어서(이유 없는 반항) 당황하게 만든다.

허 교수에 따르면, 한국이 경제규모나 일인당 국민소득은 선진국의 수준을 충족했지만 사람들의 사고나 행동방식은 여전히 개발도상국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맞는 말이기도 한 것이 한국은 지구상에 비슷한 예가 없을 정도의 압축적인 경제발전을 겪었기 때문에 세태와 문화가 너무도 빨리 변했고 그럼에도 문화지체현상은 일상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사춘기는 질풍노도의 이유없는 반항의 시대

인지발달 연구의 태두인 피아제(Jean Piaget)에 의하면 청소년기는 '형식적 조작기(formal operational stage)'에 들어선다. 이 시기에 청소년들은 처음으로 추상적 개념을 다룰 수 있게 된다. 동시에 현재뿐 아니라 과거와 미래도 생각할 수 있으며, 실제 물건이나 구체적 숫자가 없이 언어적 진술로 상징되는 정신적 표상만으로 문제도 풀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A가 B보다 키가 크고 B는 C보다 키가 크다면 A와 C 중에 누가 더 키가 큰가를 물었을 때 구체적 조작기의 아동들은 이 문제를 풀기 어려워하지만, 형식적 조작기의 청소년들은 쉽게 해결할 수 있다.또 다른 중요한 특성은 가능성의 세계를 중요시하고, 가설적 사건을 다룰 수 있으며, 사실과는 다른 것을 수용하고 상상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일차적으로 '지금 여기'의 세계에 한정된 삶을 사는 아동과는 달리 청소년들은 더 넓은 원대한 세계, 즉 자신들의 미래와 그들이 속하게 될 사회의 본질에 대해 사고하기 시작한다. 청소년들은 또래와 모여 밤을 새워가며 지금까지 전혀 관심이 없었던 사랑, 정의 등에 대해 열변을 토하기도 한다. 소위 '개똥철학자'가 된다.

이런 과정에서 청소년들은 놀라운 이상주의자(理想主義者)가 되기도 하고, 유토피아적인 세계에 대한 꿈에 빠지기도 한다. 이 결과 그들은 현실 사회와는 판이하게 다른 가상적인 사회를 상상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청소년들은 더 나은 세계에 대한 이론을 세우는 '몽상가(夢想家)'가 되기도 한다.그러나 형식적 조작 능력의 획득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함께 불안을 가중시키고, 이상주의를 추구하는 등의 부정적인 영향도 끼친다. 또한 자신과 타인의 사고와 감정을 구별하지 못하는 자아중심성을 부추긴다. 이 시기의 자아중심성은 청소년들이 자신의 사고에 무한한 힘을 부여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들은 사신의 생각을 현실적으로 검증해보려 하지 않고 '굉장한 미래를 그리거나 관념을 통한 세계의 변혁'을 꿈꾸게 된다,

韓 사고 행동방식은 여전히 개도국 머물러

피아제는 청소년들이 실제로 성인역할을 수행하게 될 때에야 비로소 최종적인 탈 중심화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이때에야 그들은 자신의 사고에 대한 한계점과 문제점을 알게 되며, 이론적인 구상이나 유토피아적 환상은 그것들이 현실세계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따라서만 가치를 갖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론적인 구상이나 유토피아적 환상은 그야말로 환상(幻想)이고 현실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은 항상 현실로부터 그 실재성을 검증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만의 환상을 현실이라고 믿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비정상의 상태가 된다. '환상(delusion)'과 '현실(reality)'을 구분하는 능력으로 성숙과 미성숙이 나뉜다. 건강하고 성숙하게 살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현실검증(reality test)을 해야 한다. 하지만 자아가 불안정한 사람들은 자신의 망상이 비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 두려워 주장(主張)만하고 검증을 하지 않는다.

현실에서 자신들의 주장이 실현되지 않으면 당연히 기존 주장의 오류를 깨닫고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잘못된 점을 찾아서 현실에 맞게 자신의 주장을 수정하여 더욱 현실적이 되도록 하면 된다. 하지만 이들은 자아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만약 인정하면 과도하게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외부로 그 원인을 돌린다.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지 못하게 방해하는 현실을 잘못된 것으로 치부하고 '적폐'로 몰아버린다. 그리고 그 적폐를 청산해야만 자신들이 꿈꾸는 유토피아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는 가상(假想)의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환상과 현실이 뒤죽박죽이 되어 기상천외한 사건을 불러일으키는 돈 키호테(Don Quixote)가 된다. 길을 가던 돈 키호테는 풍차를 거인이라 생각하여 습격해 들어간다. 그 결과 풍차의 날개에 떠받쳐 멀리 날아가 떨어져 버린다. 그런데도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 돈 키호테는, 이것은 마술사가 거인을 풍차로 탈바꿈시켜 놓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2001년 개봉되어 제74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감독상, 여우조연상, 각색상 등을 수상한 <Beautiful Mind>는 22세 때 27쪽 짜리 논문을 발표하고 박사학위 취득하며 제2의 아인슈타인으로 불린 천재 수학자 존 내쉬(John Nash)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내쉬 균형(Nash's equilibrium)'으로 유명한 그는 50년 동안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면 살았지만 199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였다.

이 영화의 거의 마지막에 나오는 장면에서 필자는 제일 감동을 받는다. 노벨위원회에서 존 내쉬를 잠정적으로 경제학상 수장자로 결정한 후 마지막으로 그가 정신이상자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감사관을 파견한다. 감사관이 복도에서 기다리다가 강의를 마치고 나오는 존 내쉬에게 잠깐 이야기를 하자고 청한다. 그러자 내쉬는 마침 앞에 있는 여학생에게 'Can you see him?(이 분을 볼 수 있어?)'라고 묻는다. 여학생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세 번이나 확인한다. 존 내쉬는 자신이 환상을 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낯선 사람을 보면 혹시 환상이 아닐까 확인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검증이다. 그가 조현증을 깊게 앓고 있을 때는 자신이 환상을 본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조현증에서 벗어나면서 환상을 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현실검증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놀라운 경제 발전에 새태와 문화 급속 변화

요즘 한국 사회나 정치 현실을 보면 꼭 청소년들이 다투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머리로는 어른스럽게 '새는 양 날개로 난다'는 진리를 이해하는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어린이들처럼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다. 그리고 선거결과로 나타난 결과를 왜곡하면서 현실검증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전인수 식으로 해석하면서 더 독선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전 늘 수를 믿어왔습니다. 이론을 이끄는 방정식과 논리를 말입니다. 하지만 평생의 연구를 통해 무엇이 진정한 논리인지 묻고 싶습니다. 누가 이성을 결정하는 걸까요? 그 탐구로 저는 물질적인 세계와 형이상학적인 세계와 비현실적인 세계에 빠졌다가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전 가장 소중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발견이죠. 어떤 논리나 이성으로도 풀 수 없는 신비한 사랑의 방정식을 말입니다. (부인을 바라보며) 당신 덕분에 이 자리에 섰습니다. 당신 덕분에 내가 존재하며 당신은 내 존재의 이유입니다. 감사합니다." 존 내쉬의 노벨상 수상 소감의 끝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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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